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
벤처기업 '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에 합류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기업 신입사원 또는 자본이나 기술이 없는 소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경험을 하였다.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비록 깊이 있는 내공은 아니었지만 서른 살의 나에게는 우물 안을 벗어나 바깥세상 구경을 하며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회사는 나름 국내외적으로 성과를 올리며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회사 대표는 개인적 사정으로 대전에 머물러야 하는 관계로 서울 본사 관리는 부사장인 내가 맡고 있었다. 그동안 직원수는 늘어 대전 연구소까지 합치면 약 30여 명이 되었고, 그중 반 정도가 서울 삼성동으로 출근하였다.
2001년 봄부터 조금씩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존 세명의 주주가 1년 전 투자유치를 하면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지고 퇴사 및 법정 소송까지 이어지며 결국엔 대표 한 명만 남은 상태였는데 회사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꽤 많은 투자금을 불과 1년 전에 유치했고, 그동안 수익도 많이 발생했는데 왜 재정상태가 안 좋아진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기존 주주와 새로운 주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서울 본사를 저렴한 곳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건비도 줄이라는 대표의 요청에 따라 서울 직원 중 상당수를 구조조정 명분 하에 퇴사를 시켜야 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맡아야만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사람을 자르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다. 모두 자신의 생활이 있고 상황이 있는데 눈을 마주 보며 퇴사란 말을 입밖에 쉽게 꺼낼 수 있겠는가. 대표는 이 곤란한 일을 직접 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부하직원 입장에서 사장이 하라면 해야지. 그동안 정들었던 많은 이들이 화가 난 얼굴로 면담을 마치고 퇴사 준비를 했다. 이때부터인 거 같다.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뚝 떨어진 게.
본사를 이전하고 인원을 줄였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급여가 제 때 안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는 여전히 개인적 사정으로 대전에 머물렀고 서울 직원들의 불만 관리는 내 몫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기존 주주와 새 주주 간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금 관리는 대표와 경리가 하기에 현금 흐름과 향후 계획을 파악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 하나 확실한 것은 직원들의 사기는 계속해서 내려갔고 그것에 대해 회사 대표는 액션이 없었다. 자금 관련하여 여러 번 통화도 하고 만나서 이야기해 보았으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저런 이유로 유동성이 바닥이라는 것이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아니해야만 하는 일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 외에는 안 보였다. 내부 회의를 거쳐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 단가를 대폭 낮추었다. 판매량은 늘어 수익이 좀 올랐지만 1년 전 매출과 비슷했고, 그나마도 점점 줄어드는 불안한 추세였다. 그동안 경쟁사가 많아졌고 뭔가 차별화가 될만한 발전이 없었던 것도 매출 하락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강수를 두었다. 아직 많은 이용자가 있는 게시판 무료 서비스를 전면 중지하고 유료 서비스로 전환했다. 예상은 했지만 반발이 심했고, 수익은 좀 올랐으나 이용자 수는 점점 줄어갔다. 사실 단가를 낮추거나 유료 서비스 전환과 같은 큰 변화는 장기적 관점에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을 해야 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라 마치 마지막 카드를 꺼내는 절박함으로 발등의 불을 꺼야만 했다.
2021년 6월, 벌써 수개월째 급여가 제대로 지급이 안되고 있다. 외벌이를 하는 나로서는 생활비가 절실한 상황이다. 회사에 비전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더 참고 견디며 곧 다가올 밝은 미래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회사 대표와 주주들의 말과 행동은 그런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게 했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믿고 견디고 있는 직원들을 위해 가족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장면이 있다. 난 그런 위인이 못된다. 무조건 가족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7월에 퇴사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는 폐업을 하였다. 한때 기술 하나로 수십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포부를 밝히던 벤처기업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은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왜 그 잘 나가던 벤처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름 원인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는 지금의 스타트업 기업에게도 정확히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되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대표가 기술을 모른다.
기술이 핵심인 벤처기업의 대표라면 그 기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장이 식당을 차리면 안 되는 것과 유사하다. 중견 기업 이상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소기업의 경우, 유사시 대표가 현장에 투입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핵심의 실체를 알고 있어야 경쟁력도 알 수 있다. 나와 회사의 기술이 남의 것과 비교했을 때 지속 성장이 가능한지,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입이 가능한지, 현재 회사의 개발자들은 방향을 잘 잡고 있는지 등등. 크게 성장한 벤처기업을 보면 대부분 대표가 개발자 출신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회사의 대표는 그 회사의 핵심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노브레이크의 대표는 핵심 기술을 거의 몰랐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들과 기술회의를 해도 그들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으며 그 방향으로 제대로 가는지도 파악이 안 된다. 대표는 당장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고민을 끝없이 해야 하는 자리다.
2. 투자 유치는 독이다.
지금의 스타트업 뉴스를 보면 20년 전과 유사한 점이 많다. 뭔가 미래비전을 간략히 만들고 그걸로 투자를 유치하는 패턴. 그렇게 받은 투자금으로 회사를 키운다는 플랜. 투자금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다. 혹시라도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채무의 짐이 없다는 이점이 저변에 깔린 게 아닌가 싶다. 또한 투자를 받으면 왠지 큰 목돈이나 수익이 발생한 거 같고 회사와 개인적으로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나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투자보다는 차라리 은행 빚이 낫다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과반 이상이 투자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다. 책임감이 은행 융자보다 작다 보니 때로는 심사숙고 없이 자금 집행을 하기도 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하지만 돈의 성격을 잘 살펴보자. 은행 빚은 감정이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이자만 지불을 잘하면 그 돈을 가지고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아무런 관심이 없다. 지불 불이행을 한다면 계약 당시 약속한 보증 수단으로 보존을 하면 된다. 한마디로 '행운을 빈다' 이걸로 끝인 것이다. 반면 투자금은 그 안에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다. 어떤 이는 그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젊음을 바쳤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그 투자금이 나와 가족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런 돈은 사실 아주 무서운 것이다. 사업 실패로 투자금을 모두 날려도 투자 유치 시 조건에 따라서 법적인 변제 의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던 감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차라리 은행 빚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책임감도 훨씬 높아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 사업이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크다. 원하는 수준의 융자를 받을 수 없다고? 그건 욕심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저리 금융상품이 많다. 소상공인 지원정책, 중소기업 진흥공단, 은행별 기업 융자 프로그램 등 찾아보면 얼마든지 내 현실에 맞는 도움 창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