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리눅스
전 직장 '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를 통해 한국의 벤처기업 흐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이왕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나름 자신감도 생겼으니 좀 더 크고 체계화된 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번엔 누구의 권유가 아닌 내가 일 하고 싶은 곳, 좀 더 배울 수 있는 그런 직장을 계속해서 고민했다. 결론은 한 군데로 기울었는데 그곳은 바로 '한컴리눅스'. 한글과 컴퓨터 계열사이며 리눅스 OS 기반의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다. 현대미포조선을 퇴사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리눅스에 푹 빠져있었고, 리눅스 기반의 오픈소스 오피스 프로그램 '스타오피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한컴리눅스의 대표 사업모델은 한글과 컴퓨터사의 '아래아한글' 오피스 프로그램을 리눅스 기반으로 변환하여 배포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Windows OS 및 오피스 프로그램이 비싼 반면, 무료인 리눅스 OS를 활성화해보자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의 반발심이 저변에 깔린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업무의 핵심인 리눅스용 오피스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미 미국의 Sun Microsystems사에서 오픈소스 기반의 개방형 오피스 프로그램 'Star Office'를 공개했으나 아직 기능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한컴리눅스에서는 안정된 '아래아한글' 소스를 기반으로 리눅스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일 하고 싶은 직장은 정했는데 정작 이 기업에서는 채용공고가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무작정 전화해서 채용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묵직한 목소리의 어느 남성에게 전화가 연결되었다. 전 직장에서 해외사업팀에 있었고 귀사의 비전에 공감하여 함께 일하고 싶은데 채용 계획이 있는지 문의를 했다.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였으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이력서를 보내라고 한다. 단순 구직을 위해 여러 군데 넣는 이력서가 아닌 오직 여기 아니면 안 되는 심정으로 정성껏 작성하여 이메일을 보냈고, 얼마 후 답장이 왔다. 면접 오라고. 기쁜 마음으로 들뜬 마음으로 논현동에 위치한 한글과 컴퓨터 본사를 방문했다. 채용 담당자는 중년 남성이었으며 직함은 부사장이다. 한컴오피스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질문이 들어왔고, 자신 있게 리눅스, 오피스 그리고 경쟁 제품인 스타오피스에 대해서 설명하며 기술적 지식을 어필하였다. 또한 전 직장에서 진행했던 일본과 미국에서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간략히 말씀드렸다. 잠시 후 면접관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한 여직원이 합석을 한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알고 보니 내 일본어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함께 근무 중인 일본인 직원을 부른 것이다.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녔기에 무난히 인터뷰를 마쳤고, 일본어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웃으며 나가신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 면접을 진행하였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출근하라고. 와우~
첫 출근을 하였다. 직원은 대략 100여 명. 벤처기업 치고는 대기업 수준이다. 해외사업팀에 배치를 받아 약 10여 명의 팀원 및 팀장과 인사를 했다. 본격적으로 회사 제품 파악 및 해외 사업의 흐름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 오피스 프로그램은 CD에 저장되어 라이선스 키와 매뉴얼이 포함된 작은 박스 단위로 판매가 되었다. 한컴리눅스는 리눅스용 오피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데스크톱용 리눅스 OS 버전을 함께 출시하였다. 따라서 제품을 구매하면 OS 설치는 기본이고, 오피스를 포함한 기본적인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모두 제공된다. 단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일반 유저들은 MS Windows OS에 익숙해 있고, 리눅스 OS용으로 제작된 응용 프로그램의 수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다는 것이다. 이 큰 벽에 틈을 만들어 돌파는 해보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가장 큰 목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원은 컴퓨터에 한컴리눅스 OS를 설치하였고 업무용 프로그램도 자체 제작한 것과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는 아주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회사 직원들이 직접 자사 제품을 사용해야 자부심도 생기고, 문제점도 알게 되어 발전이 가능하다. 아무튼 생각한 것 이상의 시스템이 갖추어진 회사라 다행이었고, 이곳에서 진짜 나의 꿈을 펼쳐 보고 싶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애사심 마저 생긴다.
개인적으로도 변화가 있었다.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서울 상계동 17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욕조가 있는 화장실을 보고 와이프가 눈물을 흘린다. 가락 시영아파트에서는 욕조가 없는 1평 남짓한 화장실이라 김장용 큰 빨간 대야를 사다가 아이와 함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곤 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가 너무 오래되었고 시장과 가까워서 그런지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 아이에게 안 좋다는 결론 하에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한 것이다.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고 급여도 전보다 오른 그리고 마음에 드는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시작했으니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밝아 보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