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기 2편: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거 잘한 걸까?
어드미션을 받은 대학교는 독일 중부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었다. 반년 동안 정들었던 에센을 떠나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한적하고 지루할 것 같은 독일 시골 생활과 늦깎이 대학원생으로서의 적응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독일의 석사 과정은 한국에서 봐왔던 것과 사뭇 달랐다. 토플 점수를 만들어 입학은 했지만, 모국어가 한국어인 나에게 영어로 수업을 듣고, 페이퍼를 쓰고, 사교하는 일들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수업 중 교수님과 대학원생들 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학습하는 것만 익숙했던 나는,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교수님과 의견을 주고받는 문화에 적잖이 당황했다. 공부는 어렵고, 적응은 더 어려웠다. ‘내가 과연 잘 선택한 걸까?’ 하는 생각이 여러 번 스쳤다. 그래서 졸업을 잘 했냐고? 우여곡절 많았던 나의 독일 대학원 생활 2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독일의 학기는 여름학기(Sommersemester)와 겨울학기(Wintersemester)로 나뉜다. 한국은 주로 3월에 신학기가 시작되지만, 독일의 본학기는 겨울학기이다. 다만, 여름학기에 입학한다고 해도 커리큘럼이 1년 단위로 짜여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문제는 없었다. 예를 들어, 어떤 수업에서는 나보다 먼저 입학한 친구와, 또 어떤 수업에서는 나보다 늦게 입학한 친구와 함께 들을 수도 있었다. 입학식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같은 프로그램을 듣게 될 친구들과 처음 마주하는 자리였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실 나이는 조금 있었지만, 액면가는 다들 비슷해 보였다(물론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날, 내 대학원 생활은 물론 독일 생활 전반에 걸쳐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두 친구를 만났다.
혼자 멀뚱히 있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남인도 출신의 하쉬, 그리고 에센에서 학부를 마친 독일 출신 타티아나. 지금 돌아보면, 이 두 친구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졸업을 잘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후 같은 수업을 듣고, 팀 프로젝트도 함께하며 서로 의지했다. 특히 언어 측면에서 두 친구의 영어는 거의 원어민 수준이었는데, 그들과 매일 대화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도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석사 프로그램이 인터내셔널 과정이어서 다양한 국적의 다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절반은 독일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나처럼 외국인이었다. 한국인인 나를 제외하고도 미국, 나이지리아, 스페인, 프랑스, 중국, 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다. 각자의 문화도, 행동도, 영어 발음도 달랐다. 살면서 이렇게 글로벌한 환경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이후 독일 회사에서 일하면서 더 글로벌한 환경을 경험했지만!)
수업을 선정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한국의 석사(한국에서 석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학사 시절 과사 근로를 하며 석사분들을 본 경험상)와는 다르게 독일에서의 석사 프로그램은 학부의 연장선 같았다.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고, 심화 과정을 고르고 이에 따른 수업 일정들이 나온다. 요구하는 학점을 교수가 원하는 수준으로(그래서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다) 이수하면 석사 논문을 쓰는 단계로 넘어가고 논문 제출과 디펜스라 불리는 발표를 하면 최종 성적에 따라 졸업 여부가 결정된다. 석사를 하며 놀라웠던 점들이 많았지만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첫 번째, 수업 중 교수와 정말 많은 의견을 나눈다. 학생들도 본인들 주장을 굽히지 않고 교수와 때로는 날을 세우며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질문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문제였다. 부족하더라도 나의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걸 노력했고, 이러한 proacive 함은 대학원 만이 이후 독일 회사를 근무하면서도 요구되는 사항으로 대학원 경험과 연습이 이후 직장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는 교수님의 평가 방식이었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고, 그들이 요구하는 기준점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기준점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같은 수업을 다시 들어야 하고 연속으로 fail 한다면, 졸업이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페이퍼 작성의 경우 APA형식에 따르지 않는다면, 내용을 보지도 않고 최하점을 준다. 내용을 검토하기에 앞서 형식이 완벽해야 한다는 점인데, 이는 속도를 늦추는 단점은 있지만 한 편으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독일 사회의 모습과도 닮았다고 느끼는 포인트인데,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 형식보다는 내용이 우선이고, 아이디어가 좋다면 형식이 조금 아쉬워도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성장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 같다. 반면, 독일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쌓아나간 덕에 속도는 더디지만, 견고하게 기반을 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독일 학생들이다. 독일 학생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지만 스팟성이 아닌 꾸준하게 하고, 그렇다고 개인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파티를 즐기고 다음날에도 도서관을 가고, 운동과 취미를 놓치지 않는다. 시험기간에만 반짝 공부하거나, 공부만 하거나, 놀기만 하거나가 아닌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학습을 꾸준하게 지속한다. 시험준비 또는 통과를 위함이 아닌 조금 오버하자면 수련하듯이 공부를 한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학을 오고 대학입학에 비해 졸업이 어려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학사 졸업률이 약 30%라고 한다. 교수의 기준점을 통과해야 하니 적당히 해서는 졸업이 어렵다. 그렇게 학사를 거쳐 석사를 진학한 친구들은 그 과정을 거치고 훈련된 자원들이다. 석사 졸업률은 학사에 비해 높지만, 그들에게 석사는 하고자 하는 공부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물론 나와 같이 석사라는 졸업장에 의미를 두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독일 친구들에게 졸업은 우선이 아닌 결과로 따라오는 무엇이 아닐까 싶다.
위 세 가지 모두 내가 이겨내야 하는 새로운 환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시스템이 나에게는 스트레스였고, 석사 공부를 하며 살면서 처음으로 원형탈모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행히 하쉬와 타티아나의 도움, 나름의 노력, 그리고 좋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온 오기가 있었다. 매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버텼다. 그래서 졸업은 잘했냐고?
이어서 3편: 공부하러 온 거야? 축구유학을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