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기 3편: 늦깎이 축구 선수, 독일 리그 데뷔
독일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특히나 시골에서 생활하며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조용하고 고독한 일이다. 유흥이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은 독일에서, 그것도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 생활하는 것은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친구들과 요리하고, 운동하고, 맥주를 마시며 파티도 즐겼지만, 도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다행히 나는 술을 마시는 것보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이런 환경이 그나마 견딜 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축구가 있었다.
독일, 축구의 나라에서 클럽팀에 합류하다.
독일 축구라고 하면 보통 분데스리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클럽 스포츠가 잘 발달되어 있어 지역마다 축구팀이 있고, 그 안에서도 1군과 2군이 나누어 운영된다. 1부 리그, 2부 리그 아래로 내려가면 지역리그가 있으며, 그보다 더 작은 지역리그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지역리그에서도 하위 리그에 속한 팀의 2군 선수로 활동하게 되었다.
팀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모로코에서 온 친구 덕분이었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걸 알고, 2군 테스트 경기가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지역 축구팀이라고 해도 나름 전용 구장이 있었고, 천연잔디, 인조잔디, 그리고 풋살 경기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1군은 천연잔디에서 경기를 치렀고, 2군은 보통 인조잔디에서 경기를 했다. 2군 팀은 절반이 이 지역 출신이고, 나머지 절반은 나처럼 대학에 오면서 이곳으로 이사 온 학생들이었다. 테스트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는지, 다행히 나도 2군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일이었다. 팀 운영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형태였기에 선수들이 일정 금액을 회비 형식으로 납부하며 운영되었고,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1군에서 콜업을 받기도 했다. 선수들 대부분은 독일인이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어릴 때부터 클럽 스포츠를 통해 축구를 해온 친구들이었다. 나름 도시를 옮기며 새로운 팀으로 이적(?) 절차를 밟고 들어온 친구들이었다. 독일에서는 아마추어 팀이라도 구조적으로 체계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다.
독일어 그리고 첫 골
팀의 대부분이 독일 친구들이었고, 또 절반은 지역 사람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영어보다 독일어가 필수적이었다. 급하게 축구 용어 정도는 독일어로 익히고, 훈련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리그 경기 출전 기회도 얻었고, 첫 골을 기록하는 순간도 맞이했다. 팀에는 새로운 선수가 첫 골을 넣으면 라커룸에 맥주 한 짝을 사 오는 전통이 있었는데, 기쁜 마음으로 맥주를 한 짝 사서 가져다 놓았다.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맥주부터 마시는 문화도 새로웠다. 역시 독일은 맥주와 축구의 나라였다. 팀에 합류한 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기 위해 헬스장도 매일 가고, 축구에 필요한 근력을 기르며, 매주 훈련을 꾸준히 하며 체력과 실력을 키워나갔다. 지금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체력이 좋았던 시기였다.
축구가 주었던 위로
대학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외로움, 부족한 독일어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 영어로 진행되는 석사 과정과 페이퍼 작성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특히 시골 지역이었기에 캠퍼스를 벗어나면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 선택이었고, 욕심이 있었기에 조금씩 나아가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위로와 즐거움을 준 것이 바로 축구였다.
운이 좋아 좋은 경기장에서 좋은 친구들과 공을 차며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비록 하위 리그였지만, 독일의 클럽 스포츠 시스템 안에서 공식적으로 등록된 선수로 뛰어볼 수 있었던 경험은 특별했다. 공부와 축구, 두 가지에 전념했던 그 시절. 30살 늦깎이 학생이자 늦깎이 축구 선수였던 그 시절. 지금도 힘이 들때면 그때를 떠올린다. 하고 싶은 걸 시작하고 해내고야 말겠다고 이 악물고 달리던 나를. 아, 그래서 졸업은 잘했냐고?
이어서 4편: 석사 논문을 써보자 그리고 뮌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