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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스텔 May 02. 2022

엄마의 시누이한테 덤볐습니다 (1)

Chapter 1. 가족 관계 실패 - <고모편>

  어릴 적에는 설날과 추석만을 손꼽아 고대할 정도로 명절을 좋아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도 분명 있었지만 특히 설날이면 친척 어른들이 와서 주시는 용돈이 그렇게 좋았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어른들도 용돈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크면 다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이었다. 유독 그 이야기를 돈 주시면서 강조하신 고모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둘째 고모셨다. 어릴 적엔 만 원을 주시면서 다 갚아야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던 게 이제는 왜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좋지 못한 말로 들리는 건지. 그 사단만 아니었어도 분명 '그깟 만 원 주면서 생색은.'이라는 생각을 분명 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엄마는 명절이 싫어.”


  어릴 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 갔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부터는 조금 이해가 갔고, 그 사건을 이후로는 완전히 나는 엄마에게 동화돼 있었다. 엄마가 명절이 싫을 법도 한 것이 엄마의 시누이 그러니까 나의 고모만 해도 6명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아빠는 형제들 중에서 장남이셨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아빠가 장남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한테 예전에 자식들을 낳으신 이야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원래는 아버지 위에는 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병 때문에 자식들이 죽는 경우가 허다했고, 아빠의 위에 형 역시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이른 나이에 아들이 죽었다는 슬픔에 계속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하셨던 거 같다. 그렇게 줄줄이 낳으셨던 게 고모 5명이었고 부단한 노력 끝에 태어나신 게 아빠였다.


  아빠 뒤로는 삼촌과 막냇고모까지 해서 할머니에게는 딸 6명과 아들 2명 이렇게 8명이 자식으로 있으셨던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 엄마에게는 이렇듯이 시누이가 많았고, 아가 장남인 탓에 매년 명절이며 제사 때 제사 음식을 만드시느라고 고생을 제법 하셨다. 음식만 만드는 것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매 명절마다 오시는 친척들 음식을 준비하시며 그야말로 '수발'까지 들어야 했기에 그 힘듦은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 요새는 왜 고모들 안 오셔?”

“글쎄, 서로 사는 게 바쁘니까 그렇지 않을까.”


  내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주 오시던 고모들이 내가 좀 더 큰 후인 고등학교 때가 됐을 때는 오지 않으셨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어릴 적에는 크면 클수록 고모들이 용돈을 많이 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얼른 내 스스로가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기만을 고대했지만 막상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명절이면 항상 오시던 고모들이 전혀 오시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서 한창 코로나가 지속되었고 당연히 코로나로 인해 모일 수 있는 여건은 마땅치 않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 건가 싶었다.


  고모들이 안 오시니까 엄마도 근 몇 년은 명절 당일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외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편하게 가실 수 있었다. 우리 집은 늘 명절에 외할머니댁에서 편하게 저녁까지 먹고 집에 오는 게 근 몇 년은 일상화가 되었는데 그러다 그 조용하던 어느 날 그 사건이 발발하게 된다. 그 사건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년도에 있었던 일이었다. 당연히 그날 역시도 고모들이 오실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고 있지 않았다. 이건 아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날 외가댁에서 우리 엄마와 외삼촌들과 함께 평소보다 술을 과하게 마신 편이었다. 술을 다 마시고 잠들었다가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일어났는데 그날따라 아빠가 수상쩍었다. 평소 같으면 느긋하게 움직이시다 집으로 갔을 법한데 술도 덜 깬 엄마와 나를 깨우고 얼른 집을 가야 한다고 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 집에 가자는 아빠의 말씀에 우리 가족은 평소보다 섣불리 집으로 가게 되었고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왔나 보네. 어, 많이 컸다.”


  평소에는 오지도 않으시던 고모들과 고모부 그리고 오래간만에 보는 친척 동생들까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이미 냉장고에서 음식들을 꺼내다 드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고, 우리 가족은 인사를 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술기운에 몸이 피곤하셨는지 방 안에 누워 계셨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 집에 있는 라면을 끓이려고 냄비를 꺼냈다. 그러다 라면을 끓이려는 것을 보던 막내 고모부가 내쪽을 보더니 걱정 어린 말투로 이야기하셨다.


“라면 먹게?”

“아, 외가댁에서 술을 과음해서 속이 안 좋아서요….”

“그러면 술 약 같은 거라도 사 먹지.”

“흐흥. 고모부가 사주시게여?”

“그래! 같이 나갔다 오자.”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했던 것이었는데 고모부는 진심으로 걱정되셨는지 나를 데리고 편의점을 가서 술 깨는데 필요하는 약과 먹을거리들을 사주셨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같이 들어왔고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라면을 끓이려고 커피포트를 끓이고 있을 때였다. 주방에는 둘째 고모가 계셨는데 왜인지 평소보다 표정이 좋지만은 않으셨다. 나는 워낙 눈치를 잘 보는 성격이었기에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라면을 조용히 만들고 있었는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야기하시는 둘째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 피도 안 마른 게 술을 그렇게 과음을 해?'

'고모부한테 술 약이나 사달라고 하고 말이야….'


  작게 중얼거리듯이 하는 이야기였지만 분명 나를 향해 하는 말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이야기만 들어보면 어른들 입장에서는 제법 버르장머리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모부가 사주신다고 홀라당 따라 간 행동이 조금 그랬었나. 술을 과음한 건 어떻게 보면 혼날만한 행동이었지만 그 시기 나는 술을 어떻게 먹든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성인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나만의 반성을 하며 마저 속을 달래려고 라면에 물을 다 부은 타이밍이었다.


니네 엄마 어딨어!”

방에... 있으시겠죠?”


  갑자기 큰 목소리에 나는 놀랐다. 급발진도 그런 급발진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당황함 그리고 정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둘째 고모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나셨는지 쿵쿵거리면서 엄마가 누워 계신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 역시도 외가댁에서 술을 많이 마신 상황이라 몸이 추욱 처진 채로 주무시고 계셨고 그런 엄마를 깨우는 고모의 큰 목소리 때문에 엄마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나셨다.


“무슨 일이신데요….”

“무슨 일? 정말 무슨 일인지 몰라서 그래?”

“말씀을 해주셔야 알죠.”

“너가 잘못했으니까 너가 알 거 아냐!”


  고모의 큰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다른 고모들과 고모부 그리고 아빠와 할머니 친척 동생들까지도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방 안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신 건데요. 끝까지 물어봐도 설명도 않고 고모는 엄마에게 윽박을 질렀다. 보는 내내 나도 뭐 때문인지 너무 답답하였고, 끝끝내 고모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야기하시는 듯했다.


“여기 왜 누워 있어!”

“술을 많이 과음해서 머리가 아파서 누워 있었어요.”

“뭐? 머리가 아파? 그러면 죽어!!”


  사실 이때 당시에 정신이 없던 탓에 둘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들려서 잘 몰랐는데 동생들이 옆에서 가까이 듣기로는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셨다. 대뜸 죽으라니.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엄마가 외가댁에서 돌아오자마자 누워 있으셨던 것이 둘째 고모 눈에는 눈엣가시처럼 보이셨던 것이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의 사정을 고모한테 천천히 설명했지만, 고모는 전혀 들으시려는 마음이 없었고 그저 의미 없는 역정만 내실 뿐이었다. 마치, 날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말이다. 엄마도 처음에는 제법 차분히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친척들 앞에서 둘째 고모로부터 욕을 듣는 이 상황이 억울하셨는지 거실에 있는 아빠를 향해 소리치셨다.


“이러려고 집에 빨리 가자고 했어? 수발들라고?”

“그래서 집 오자마자 수발들었어?”


  수발이라는 단어에 화가 나신 고모였는지 엄마가 아빠를 향해 하신 이야기도 맞받아쳐서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무엇이 이리도 마음에 쌓이셨던 건지 엄마의 자존심을 긁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셨다. 자신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고 결혼한 거 아니었냐는 이야기나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을 못 한다면서 ‘뭣도 안 되면서 결혼시켜놨더니’라면서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은 엄마도 상당히 상처였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더욱 상처였고 분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결혼도 전에 내가 태어나는 바람에 결혼한 이유가 크다고 하셨으니까.


  가뜩이나 술 약 때문에 고모께서 내게 싫은 소리를 한 상황이라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는데 더 나아가서 무려 친척 동생들이 있는 앞에서까지 엄마를 몰아붙이니 나는 화가 크게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어떤 고모들도 엄마 편을 들지 않고 당연하단 듯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고, 아빠 역시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왜 모두가 엄마 편에서는 생각을 안 해주고 남인 것처럼 구는 건지. 왜, 아빠조차도. 이렇게 모두 다 가만히 있는 사실이 너무 힘든 나머지 나는 라면 그릇을 내려두고 어른들이 다 계신 그 자리에서 소리를 쳤다.


“목소리 낮추고 이야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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