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 우리 자매가 항상 이것도 저것도 먹고 싶다고 할 때면 아빠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시다. 우리 자매는 셋 다 입은 짧지만 음식에 대한 욕심은 어느 누구보다 강했다. 이게 누구를 닮았는가 하면 다 아빠와 엄마를 닮아서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전부 입은 짧지만 대단한 식탐을 가지고 있는 가족이다.
먼저 우리 아빠로 말할 거 같으면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 양이 적더라도 아빠한테 꼭 나눠줘야 한다. 안 그러면 '아빠도 안 주고 혼자 맛있냐'라는 말과 함께 눈치 줌과 삐침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먹을 거에 특히, 달달한 간식에 욕심이 강하셨다. 물론 아빠의 이 부분도 우리는 닮았지만 우리 자매가 입은 짧아도 이것저것 먹고 싶어 하는 이 식탐과 관련해서는 엄마 쪽을 좀 더 닮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몰랐는데 엄마가 지금보다 조금 어린 성인 시절 먹고 싶은 게 여러 개가 있으면 많이 남기더라도 여러 개를 시키고 먹고 싶은 건 먹었다고 하셨다.
이런 부모님의 밑에서 자란 우리는 부모님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닮기도 했지만 세 자매였기에 치열한 관계에서 자라온 우리였으므로 한 음식이 있더라도 양보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식탐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양보해야 했던 매 순간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고 그 아쉬움이 음식에 대한 집착과 예민함으로 변질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편에서는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늘 이런 아쉬움을 감수해야 했던 나와 평생 아기인 막냇동생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언니니까 네가 양보해야지. 애기 거를 빼앗고 싶어?"
K-장녀들의 숙명이라 하면 언니니까 혹은 누나니까 양보해야 한다는 그 말. 그 말이 어릴 때부터 나를 족쇄처럼 옥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강력하냐면 나를 마치 좀생이인 것처럼 혹은 책임감 없는 사람처럼 만들어 버릴 정도다. 그렇게 그 말에 얽매인 나는 별수 없이 늘 양보하는 언니로 살아왔다. 그 먼저 몇 년 태어난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건 동생 나이가 아직 어려서 내가 동생을 배려해야 했던 것이 아니다. 동생이 고등학생이 된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저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양보를 하고 있고, 해야 했다.
"쟤가 한 두 살 먹은 애야? 언제까지 애기야."
"쟤는 80살 먹어도 엄마 아빠한테는 애기야. 그러니까 양보해."
부모님에 의한 강제적인 양보를 그 잘나신 아기님(?)을 위해 한 적이 제법 많은데 그 양보를 제일 많이 했던 부분 중 하나는 먹을 거와 관련돼 있다. 우리 집 막내는 우리 집에서 최강으로 식탐이 강한 아이다.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거나 돈이 생기면 9할 정도는 거의 먹을 거에 쓰는 거 같다. 어디선가 갑자기 생긴 콜라를 매일 같이 마시고 충치 때문에 치과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봤으니 얼마나 군것질을 좋아하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물론 단연 콜라만 먹고 그런 것이 아니다. 혼자 방에서 꼼지락 부스럭거리면서 가족 몰래 먹고 저녁을 몇 번 거르는 걸 포착한 게 제법 되니 그만큼 혼자 맛있는 음식 먹는 거에 도가 텄다.
막내는 군것질 쪽으로도 식탐이 많지만 좋아하는 음식 부류는 육류다.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도 안 먹고 다른 인스턴트나 군것질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고기를 좋아한다. 아빠가 오죽하면 만날 막내를 보면서 고기반찬 노래를 즐겨 부르신다. 막내의 제일 좋아하는 고기는 소울 푸드인 치킨. 밥 뭐 먹을까 하고 물으면 말 끝나기도 전에 치킨을 외치는 그 말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치킨에 환장한 녀석이다. 기분 나쁜 일이 있다가도 치킨 사준다는 한마디에 모든 게 풀려버리는 게 막내니 얼마나 단순한 녀석인지 모르겠다.
"막내야 치킨 챙겨라."
"아니 왜? 나 아직 다 안 먹었어!"
"우리 애기 점심에 먹으라고 그만 냅둬. 쟤 삐친다."
어느 날부터인가 치킨을 먹고 조금 남을 때면 락앤락 통에다 담아두고 치킨을 좋아하는 막냇동생이 먹도록 하는 이상한 문화가 우리 집에서 생겨났다. 원래는 모두가 배불러서 도통 먹지 못할 거 같은 한계의 상황에 따로 빼두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막냇동생이 그다음 날 먹을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배려해야만 했다. 저 녀석만 입이고 나는 주둥아리인가요. 더 먹으려는 내 행동에 부모님께 눈치 아닌 눈치를 받고 나는 손을 내려두었다.
특히 막냇동생을 향한 치킨에 대한 배려는 막냇동생이 배가 아파서 먹지 못할 때도 남겨야 했고, 동생이 빈정 상해 먹지 않은 그런 특수한 날도 계속되었다. 나이는 가족 중에 제일 어리지만 막냇동생은 그야말로 상전이 따로 없었다.
"아, 더운데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근데 아이스크림 걔 빠삐코 밖에 없는데."
"먼저 먹은 사람이 임자지 언제까지 눈치 볼 거야. 흥."
특히 막내가 평소에 좋아한다고 말한 음식들은 나와 내 둘째 동생은 눈치를 살폈다. 막냇동생이 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막냇동생만의 파블로스의 개처럼 동생의 것으로 치부하며 만약 우리가 먹고 나면 벌어질 전쟁에 대해 늘 긴장을 끈을 놓지 못했다. 종종 아빠가 동생의 것인지 구별 못하고 먹어버리려고 할 때면 나와 둘째는 그것의 호위기사인 것처럼 음식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렸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막냇동생의 음식 충신이었던 나는과감히 그 긴장의 끈을 감히 놓아버렸다.
"내 빠삐코 누가 먹었어!! 언니지?"
단번에 범인이 나라는 것을 맞춘 막냇동생은 분명 이 시대의 셜록홈즈일 것이다. 나름 연극 동아리에 속한 나였기에 거짓말을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동생의 지독한 추궁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먹었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화가 잔뜩 났는지 자신의 소유물을 건드렸다는 대가로 동생은 한동안 내가 둘째 동생에게 했던 것처럼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길래 왜 그걸 먹어. 이럴 줄 알았으면서."
"아니 먼저 먹은 사람이 임자지... 그렇다고 저렇게 화내나."
음식에 이름을 붙여둔 것도 아니고. 동생이 많은 아이스크림들 중에 빠삐코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동안 못 먹었던 상황까지는 또 아니었다. 잔뜩 먹어두고서 그깟 한 개를 내가 먹었다고 노발대발한 상황이었기에 나로서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동생 눈치나 봐야 하는 팔자라니.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사비로 동생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시켜 먹는 거로 동생의 기분을 풀었고 겨우 원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계기로 바뀐 생각은 막냇동생은 먹을 걸 사주면 단순하게 금방 풀리니 이런 식으로 늘 위험을 감수해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번 동생의 음식을 탐내는 모험을 여러 번 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까. 그 빈도수가 잦아지니 익숙해져 가는 동생이었는지 이제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같이 먹을 거냐고 한숨을 쉬며 먼저 묻는 막냇동생이다. 늘 혼자 음식을 차지하다가 점차 변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시도한 모험은 성공한 모험이었다.
근데 그날은 아직도 화가 나.
아직까지도 빠삐코와 관련된 이야기 혹은 음식 이야기라면 나오는 이야기다. 자신의 것을 탐낸 것 중에 빠삐코를 먹은 나에게 화가 단단히 나긴 했던 건지 자주 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도 동생아 어떡하겠냐. 네 화를 무서워하기엔 나도 먹는 것을 너만큼이나 좋아하는 걸. 마냥 양보할 수만 없었던 어린 장녀는 이제는 장녀라는 족쇄를 풀고 막냇동생과 똑같이 먹고 있습니다. 지지 않고, 뒤처지지 않고 전투적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