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스텔 Apr 12. 2022

K-장녀의 자매 사이에서 살아남기 (1)

Chapter 1. 가족 관계 실패 - <세 자매 편>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나의 둘째 동생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는데 내 인생을 통틀어서 그렇게 심하게 맞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일은 둘째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고서의 일이다.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나보다도 어린 동생이 나한테는 신기한 존재였었다. 첫 동생이라 신났던 나머지 조심성 없게 굴었던 것이 아니, 사실 그 어린 나이면 그럴 법도 한데 그 대가가 너무 그 나이에는 참혹했다. 귀여운 동생을 아빠처럼 안아 들겠다고 들었지만 그 어린 몸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꾸라졌을 때 아빠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날 아빠한테 리모컨으로 엉덩이를 먼지 나도록 맞았고 그때부터인가 괜히 동생의 존재가 싫었다.


"거기서 왜 그렇게 펑펑 우는 거야. 진짜 짜증나..."


  그 시기에는 아빠가 펑펑 우는 동생을 감싸 안는 것이 동생 편을 드는 것 같았고, 엄마 역시도 달래주지 않아서 내 편은 없는 듯했다. 이런 일들은 막냇동생이 태어나서는 더 심해졌고 막내는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아서 그리 달갑게 보지만은 못했던 거 같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한 동생들과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된 준비된 싸움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네는 그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한국 자매들이 흔히 싸우는 이유를 꼽자면 대부분은 옷 가지고 싸우기인데 우리 자매도 그 이유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나는 막내보다는 둘째와 옷을 가지고 쟁탈전을 많이 벌였는데 막내랑은 나이 차가 무려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기도 했고 스타일도 달랐을뿐더러 사이즈도 많이 달랐기에 싸울 일이 드물었다. 둘째와는 최근까지도 옷으로 싸운 적이 있을 정도로 옷 다툼이 너무 심했어서 하나하나 나열하기엔 밑도 끝도 없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둘째는 게임하는 것에 진심인데 내가 둘째와 싸우게 된 사건의 시작은 게임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단 우리 집은 내가 장녀이기도 했고 한창 고등학생 때 입시 준비를 하게 되면서 부모님이 내 개인 공간을 만들어주셨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침대와 함께 제법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동생들은 그 옆방인 큰 안방을 차지했는데 침대는 없었지만 둘째와 막내는 서로 간의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서 그런지 자기 둘끼리 뭉쳐서 그 방에서 잘 놀고 잘 생활하는 듯했다. 그러다 내가 대학교를 가게 되면서 멀리 기숙사에 사는 일이 잦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자유로운 공간은 고등학생이 된 둘째의 방으로 큰 안방은 막내의 독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방학마다 집에 오는 나는 잠깐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길 가다가 잠시 머무르는 나그네(?) 같은 신세였기 때문에 어느 한 방을 예전처럼은 독차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기에 동생들 중 어느 한쪽에 빌붙는 상태가 되었는데 내가 선택한 방은 본래 내가 있던 침대방이었다. 내가 짐을 들고 침대방으로 들어서자 둘째 동생은 인상을 찌푸리며 네가 왜 여기 있냐는 표정이다.


"아, 언니 오니까 또 방 안이 어질러졌어."


  그냥 한동안 같이 방 쓰는 게 싫다고 하면 되는 것을. 기숙사에서 혼자 침대를 사용하던 나로서는 누군가와 한 침대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나도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침대 방 안에 있는 컴퓨터와 둘째 동생을 분리시키기에는 동생은 게임에 한창 미쳐 있는 게임 오타쿠였다. 뭐 현재 대학가서도 게임 관련한 전공을 하고 있으니 게임 오타쿠라고 해도 뭐 틀리진 않을 것이다. 아무튼 둘째 동생과 컴퓨터는 떼어놓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그런 사이였기에 불편해도 내가 참는 것이 그때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하... 진짜 잠 좀 자자고."


  같이 방을 쓰게 된 날이었다. 밤이 되었을 때 나는 둘째 동생 저 원수와 방을 쓰겠다고 선택한 순간을 후회했다. 둘째 동생은 방학이 된 이후로부터 새벽형 인간이 되었는데 아침에 자고 밤에 일어나서 게임을 했다. 남들과는 다른 생활 패턴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자기가 무슨 미국에 사는 줄 아나. 나름 규칙적인 삶을 사는 나는 당연히 밤에 잠을 자야 했는데 거기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단순히 동생이 하는 게임 키보드 소리에 예민했던 게 아니다. 게임 친구들과 아주 격렬하게 통화를 하면서 가뜩이나 큰 목청으로 그 조용한 밤에 떠들고 나의 소중한 잠시간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엄마도 인상을 찡그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와 한소리를 하셨지만 그런 잔소리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동생이었기에 그 상황은 지속되었다.


"후... 내가 거실 가서 자든 해야지."


  처음에는 몇 번 거실에 나가서 잠을 잤다. 소파에서 불편하게 잔 경우가 많았는데 침대에 적응했던 나로서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하다는 느낌보다는 피곤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왜 게임하겠다는 애 때문에 불편해가며 잠을 자야 하는 건데요. 꾹꾹 억울한 마음을 겨우 누르고 있었는데 그 감정이 분출되는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찾아왔다.


  나는 방학에 단기간으로 학원 알바를 했는데 중학교 학생들을 맡다 보니 집에 도착하면 어느덧 밤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늘 다음날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밤늦게까지 수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필 방에서 수업을 한창 준비하고 있는 찰나에 밤낮 바뀐 동생이 컴퓨터를 차지한다. 그렇게 내 흐트러진 집중력과 함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내 참을성을 테스트해보려고 한 것이면 대성공이다. 참았던 감정을 터트리며 나는 고함을 쳤다.


"아 좀 조용히 좀 하라고 했지."

"알겠다니까?"

"나 지금 공부하잖아. 좀 조용히 하라고."

"아 알았다고!"

"네가 왜 화야. 화는 내가 내야 하는 거잖아."


  늦은 밤에 큰 고함에 깬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와 우리 둘을 중재했다. 나름대로 둘째를 중재하는 듯한 엄마였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둘째라는 것을 알기에 엄마도 포기한 듯 엄마는 나를 쳐다보셨다. 그리고 네가 참으라는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 엄마는 왜 항상 나한테만. 나는 하던 책을 덮고 분노 분출의 표적을 동생에서 엄마로 바꾸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왜 게임하는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데."


  저깟 게임이 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언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둘째 동생 성질이 다혈질인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피해를 보는 게 맞나 싶었다. 나는 그 날부로 둘째 동생에게 나만의 시위를 시작했다. 동생에게 잘못을 지적하며 타일러도 통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단 하나의 방법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몸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는 감정적으로 분출해서 화를 마구 낸다고 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싸움만 더 부추기는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언니, 나 이거 좀 해줘."

"……."

"언니!!"


  유령 취급. 한마디로 무관심이다. 이제 화를 낼만한 가치도 없고,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내색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부탁하지도 않고 쳐다도 보지 않기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자기도 똑같이 말을 걸지 않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 무시하는 것에 동생이 지쳐 스스로가 심했음을 느끼고 먼저 사과를 한다. 이게 내가 20년 간 둘째 동생과 함께 살면서 버텨온 방식이다. 유치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른답지 못한 해결 방법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항상 동생들에게 참아왔던 내가 아니, 언니라 늘 참아야 했던 내가 장녀로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던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생일 같은 띠동갑 모녀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