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스텔 May 05. 2022

엄마의 시누이한테 덤볐습니다 (2)

Chapter 1. 가족 관계 실패 - <고모편>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아마 고모도 나의 목소리에 놀라셨을 것이다. 목소리 크기도 크기겠지만 한 번도 어른들 앞에서 큰소리 내지 않았던 내가 고모를 향해 소리 질렀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한테 무슨 용기가 있어서 그렇게 큰소리를 냈는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이유는 나는 몸집이 엄마를 닮아서 왜소한 편인데 반대로 둘째 고모는 덩치가 상당히 크셔서 덩치 차이만 해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게 어떤 이유냐면 만약 고모가 이성을 잃고 나를 때리기라도 하신다면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가능성도 충분했기에 더욱 그때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거 같다.


“뭐야?

“목소리 낮추시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순간 엄마를 향한 날카로운 고모의 시선은 바로 나를 향했다. 네가 감히라는 표정과 함께 쿵쿵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다가오는 고모에 맞서 지지 않고 내 시선은 똑바로 고모를 향했다. 그리고 나는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터트렸다. 좋게 말씀해도 되는 것을 왜 큰소리를 내서 이야기하시는 것인지, 정확히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신 건지. 피도 안 마른 게 어른한테 대든다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생각이 드신 건지 눈을 부릅뜨며 고모는 내려다보셨다.


“미리 오신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술도 적게 마시고 엄마도 준비하셨겠죠.

“준비를 하길 뭘 준비해?!

“아니, 몇 년간 오지도 않으시다가 코로나 때 왜들 갑자기 와서 이러시는데요.


  내 감정이 격해지자 막내 고모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온 몸으로 나를 막아섰다. 그리고 나를 다른 방으로 끌고 데리고 들어가셨다. 많은 친척들 앞에서 우리 엄마를 그야말로 인격적으로 '조지려고' 작정하고 오신 거 같은 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막내 고모 앞에서 나는 울컥해하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냐고. 팔은 역시 안으로 굽는다고 막내 고모는 나름대로 나를 달래시듯 하는 것 같다가도 결론적으로는 둘째 고모 편을 들고 계실 뿐이었다.


“너는 둘째 고모 성격 저런 거 알잖아.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너희 엄마 왔을 때 인사도 안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있던 건 사실이잖아.

“저희 인사하고 들어갔어요. 엄마 누워 계신 건 숙취 때문에 그러신 거고요.


  엄마가 오든 말든 음식들 이미 꺼내다 드시고 잘 놀고 계셨으면서. 우리 엄마가 더 할 게 뭐가 있다고. 사실 막내 고모가 말씀하시는 건 그저 핑계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게 이렇게까지 화내는 것이 마땅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둘째 고모가 화를 내셨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엄마와 둘째 고모가 있는 방에는 둘째 고모가 여전히 엄마한테 핀잔을 주고 계셨다. 그 과정에서 내 둘째 동생과 막내 동생도 듣다가 화난 나머지 둘째 고모를 향해 그만하라며 소리치고 있었고, 우리 자매는 엄마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서 엄마를 보호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빠와 달리 말이다.


  자세히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단연 오늘 있었던 일로만 트집을 잡고 그러는 것이 예상대로 아니었다. 이건 아무래도 할머니로부터 비롯된 거 같았다. 우리 엄마 그리고 아빠는 아빠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거진 20년, 할머니를 모셔왔다. 내가 그리고 동생들이 어릴 때는 엄마가 일을 안 다니셨지만 아빠가 다른 회사로부터 옮기시면서 예전만큼은 금전적 여유가 없다 생각하셨는지 물류창고에서 일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할머니를 매번 챙기던 엄마가 일이 힘든 나머지 조금 소홀하게 된 그때부터 말이다.


  근데 사실 이 일은 단연 엄마 때문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고모들의 탓도 있었다. 하필 엄마가 한창 일하기 시작한 시점에 맞춰 고모들도 어느 순간부터 명절이면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고, 할머니는 외로우셨던 거 같다. 그래서 명절날 당일이면 할머니와 엄마가 암묵적으로 신경전을 벌이던 때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가족이 명절날 아침이면 단체로 외할머니댁을 가기 때문이었다. 사실 하루 자고 오는 것까지도 아니고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 있다가 저녁 6시 정도면 집에 오는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항상 아쉬운 소리나 심통한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 시간 동안 집에 혼자 계셔야 하니까 외롭다는 것을 나름대로 표현하셨던 거 같다.


  이런 복합적인 일들을 아마 할머니께서 고모들에게 말씀하셨겠지, 서운하다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챙기지도 않고 시댁도 챙기지 않는 그야말로 생각 없는 며느리가 되어 있던 것이었다. 여전히 큰 목소리로 고모는 엄마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가 전제가 돼서 쏘아붙이셨고 나는 막내 고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20년간 시집살이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데요!

“뭐라고 했어, 너?

“아 진짜 말도 안 통하시고… 빡치네요.”

“뭐, 뭐?

“개빡친다고요. 개화난다고요.”


  지금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내 스스로가 대견했던 건 이성이 어느 정도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웃어른이기 때문에 끝까지 존댓말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본래 성격대로면 저렇게 남들 앞에서 나의 엄마를 갉아먹는 고모를 어른이라고 생각조차 들지 않아서 어른 취급도 않고 반말했을 법한데 성격을 잘 죽였던 거 같다. 하지만, 내 성격이 전부 죽여지진 않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우리 세대의 용어인 빡치다라는 비속어를 사용하여 내 감정을 고모한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내 말도 감정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고모라는 것을 알아서 내 감정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드렸다. 고모가 엄마가 무시당하는 것을 잠자코 보고 있을 정도로 가만히 있는 멍청이 딸들은 우리도 아니니까, 당신네들처럼.


“아 그냥 고모들 나가세요! 저희 집에서 당장 나가세요 그냥.

“내가 여길 왜 나가. 여기 우리 집이야!!”


  이 당시에 했던 이야기는 아니어서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와 아빠의 통화 내용을 얼떨결에 엿들은 적이 있는데 그제야 나는 한동안 고모들이 안 오셨던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할머니 당신의 편애 때문이었다. 아빠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집을 살 때 할머니가 돈을 보태주셨고 둘째 고모는 꽃집을 하시는데 그 꽃집을 하는데 밑천을 할머니가 보태주셨지만 나머지 고모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마음적으로 상해서 다들 안 오는 거라 아빠가 할머니께 쏘아붙이며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다들 결국 돈 때문에 돌아섰던 거였고 그러다 둘째 고모를 필두로 오래간만에 모이자는 호출에 다들 겨우 이번 사건의 명절 때 모이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고모가 인격적으로 우리 엄마를 쏘아붙였던 건 이 집에 밑바탕에 우리 할머니의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겠지. 고모 입장에서는 고모 당신의 엄마께서 준 돈으로 이 아파트에서 살면서 수발이나 끝까지 잘 들어라,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엄마는 20년간 이 집안에서 얼마나 이런 식으로 무시받으셨을까 하고.


“그만 안 해?!

“아니, 아빠.

“설령 어른이 틀린 말을 하더라도 그렇게 대드는 거 아냐!


  아빠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공감하지는 못하는 말이었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엄마가 친척 동생들까지도 있는 이곳에서까지 욕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잠자코 있을 만한 자식이 누가 있을까. 평소 부모에게 웬수 같은 자식이라 한들 어떤 그 누구도 나처럼 행동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가 하신 말씀에 얼마든지 반박하며 대들 수 있었지만 나는 평소와 달리 그러지 않았다. 나는 항상 아빠 말과 내 생각이 다르다면 꼭 내 생각을 이야기하며 반박하는 타입인데 그날은 그러지 않은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어찌 됐든 아빠는 우리 가족의 가장이니까. 나름대로 가장의 권위를 실추하고 싶지 않았다, 친척들 앞에서. 아빠 앞에서까지 덤벼 들면 분명 가정교육 잘못했다고 욕먹는 건 나의 부모님이 될 것이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와 내 동생들 그리고 엄마는 비좁은 방에서 네 명이 나란히 잤다. 나와 둘째는 침대 위에서 엄마와 막내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서 말이다. 분명 우리 집인데 우리는 어두운 방 한 칸에 갇혀서 허공만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싸움이 끝나자 밖에서는 아빠와 둘째 고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오갔고 대충 내용을 듣기에는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갖은 고충을 털어두는 듯했다.


“누나들도 직접 엄마 모시고 생각해봐. 쉬운 일인지.”

“난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저것이 달려들어서 기분이 더 나빴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오가던 거실은 아빠가 얼른 무마하더니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금방 바뀌었다. 아빠는 어찌 됐든 아빠 당신의 형제들이고 간만에 모인 이곳의 분위기를 더이상 망치기 싫으셨던 건지 얼추 그 분위기에 맞춰가며 노시는 거 같았다. 그 사이에 껴서 노는 소리를 엄마가 들으면서 울분이 터지셨는지 작게 이야기하셨다.


“밖에서 시시덕 거리기나 하고. 눈치 없이.


   날은 괜히 감정이 좀 앞서서 아빠가 그냥 너무 미웠다. 와서 달래줄 법도 한데 늘 감정 전달도 컨트롤도 서툰 우리 아빠여서 바로 그러진 않으시고 보이는 상황을 급하게 마무리하실 뿐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서 마냥 엄마 편을 들 수 없었던 그리고 우리 자매와 엄마로부터 척을 질 수밖에 없었던 그 복잡 미묘한 아빠 당신의 감정지금의 나는 이해한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이후에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화해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아빠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설명해야겠다. 여기는 고모편이니까 후일담을 이야기하자면 엄마 아빠가 화해하고 아빠와의 어색한 관계를 푼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식탁에 모여 있을 때 일이었다. 한동안 서로 말 붙일 겨를이 없어서 아빠도 늘 눈치를 보다가 어느 정도 우리 가족이 이성적인 감정으로 돌아온 그 순간 그 사건을 꺼내시며 말씀하셨다.


“그날처럼 앞으로는 어른들한테 대들진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가.”

“응, 밖에서 그러면 엄마도 아빠도 욕 먹이는 짓이니까.”

“나도 사실 알고 있어. 그래서 나 그때 아빠가 그만하라고 했을 때 내 성격 죽이고 더 아무 말 안 했어.”


  아빠도 내 성격을 워낙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 더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빠 당신도 어느 정도 내가 성격을 열심히 죽이고 아빠 말을 이 꽉 물며 들었다는 것을 눈치 채신 거 같았다. 엄마도 그날의 행동은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지적하셨고 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확실히 부모님의 말씀에 틀린 건 없었다. 나 때문에 가만히 있던 동생들도 내 행동을 보고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따라 했으니까.


“근데... 나 고모들 오시면 예전처럼은 못 반길 거 같아.

“아... 근데 앞으로 아마 안 올 거 같은데?”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진 나머지 나는 고모들이 설령 오셔도 좋게 인사를 못할 거 같았다. 왜냐면 성인이 되고서 그날의 사건은 나에게 지금까지 트라우마와 같은 일이다. 종종 꿈속에 그 사건이 다시 재현돼서 베개에 눈물을 적신 적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아빠 말씀처럼 그 사건을 기점으로 정말 고모들은 오시지 않으셨다. 그나마 고모들 중에 자주 얼굴을 비추셨던 둘째 고모까지도 이젠 명절이면 오시지 않는다. 그 사건 덕분에 조금은 편해진 엄마를 보면 다행이지만, 그날의 행동으로 하여금 더 이상 고모들과 마주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난처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면 때로는 과연 잘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엄마의 시누이한테 덤볐습니다 fin.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시누이한테 덤볐습니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