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기-Ep.01
해외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나요?
내가 유튜브에 해외취업 관련 영상을 올렸을 때도 그렇고, 해외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비슷한 질문을 해왔다. 네이버, 구글, 유튜브에 정말 많은 정보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올라와 있지만, 그 사람들의 정보를 읽고 또 읽어도 어쩐지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해외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이미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이 후기를 올리고(나도 마찬가지지만), '힘들었지만 해냈다'라는 후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이 어떤 것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답답함
엄청난 고난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맞닥뜨려보지를 않아서 오는 실체 없는 불안감
후자의 경우라면, 나는 당신이 상상하는 그 최악의 상황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해외에 나가서 돈은 돈대로 쓰고 일자리도 못 구하고, 시간만 낭비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어떡하지?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이 문제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해외에 나와봤다는 경험, 해외취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둔 포트폴리오, 그간 해왔던 영어공부.. 당신이 정말 해외취업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당신 안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가까운 미래의 당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당신은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완성되지 못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 자신이 만족할 만한 정도의 수준' 까지는 끌어올려놔야 현지에서 '내가 최고다'라는 마인드로 일을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적어도 호주 현지 회사에서는 이 마인드가 아주 중요하다)
내가 던지는 아래의 4가지 질문들이 당신의 준비 여부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질문에서 '포트폴리오' 보다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이라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싶다. 디자이너가 포트폴리오 가지고 있는 것이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포트폴리오'는 좀처럼 가지기 쉽지 않다.
포트폴리오는 당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해외취업을 시작하게 되면 당신은 준비를 열심히 했고 아니고에 상관없이 약점 투성이의 사람이 된다. 현지인보다 제한된 언어실력, 제한된 비자 컨디션, 현지 경력의 부재, 현지 학위의 부재, 외국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편견 등등.. 이런 약점들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인 것에 반해서, 포트폴리오만큼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 물론 '좋은 포트폴리오'의 기준은 끝이 없고 수정에 수정을 반복해도 끝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제출할 포트폴리오라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트폴리오를 PDF로 준비하는 것보다 웹사이트로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웹사이트 포트폴리오가 가지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내가 추천하는 이유는 해외는 한국만큼 인터넷이 빠르고 좋지 않기 때문이다. 100MB 받는데도 한-참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PDF 파일의 용량을 줄이다가 내가 열심히 작업해놓은 작업물의 퀄리티를 떨어뜨릴 바에야, 웹사이트에 올려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은 다운로드하는데 시간 쓸 필요 없으니 1석 2조!
해외취업 할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딱 1개만 준비해올 수 있다면 나는 영어를 준비해오라고 말하고 싶다.
위에서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놓고, 바로 밑에 영어만 준비해오라고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작업스킬이 너무 좋고 포트폴리오가 너무 좋아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직원을 어떻게 뽑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포트폴리오는 단기간에 집중해서 준비할 수 있지만, 영어는 단기간에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시간을 들여서 탑을 쌓듯 실력을 쌓아햐 하기 때문에, 당신이 해외취업을 할 거라고 마음먹었다면 당장 영어 공부부터 시작해라.
게다가, 맥도널드에서 빅맥 시킬 수 있는 정도의 영어실력이 아니라 회사에서 영어로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영어실력이 있는데, 현지에 왔을 때 연음이나 현지 특유의 발음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소통이 불가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처음에는 조금 멘붕이 올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하지만, 영어 실력이 아예 없는 사람인데 해외취업이 하고 싶다면? 우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 가기 전날까지 영어 공부만 하다 가겠다는 마음으로 영어 공부를 해보자. 하지만 기간이 짧아서 실력이 느는데 한계가 있다면, 현지에 있는 작은 디자인 알바거리나 혹은 한국계 현지회사에 지원해서 영어 실력과 경력을 쌓은 뒤에 로컬 현지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래도 현지에 조금 살다 보면 영어가 조금 익숙해지기 때문에, 거기에 본인이 공부까지 열심히 한다면 실력은 쭉 오를 것이다.
'비자'. 해외취업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영어실력' 다음으로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이 '비자' 문제일 것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만큼 일을 길게 할 수 있고, 제약 없는 비자가 있으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 받을 수 있는 비자는 일하는데 제약이 있고, 기간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 1년, 길어야 2년)
그래서 우리는 나름의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계획을 짜놨다고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3개의 변수 정도는 생각해두고 있어야, 우리가 가진 제한적인 시간 안에서 최대의 결과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처음 2-3달은 Casual이나 알바로 경력을 쌓으면서 Full-Time과 스폰의 기회를 노려보기
(Casual로 일하다 보면 Full-Time과 스폰의 기회가 올 확률이 높아짐)
돈을 조금 여유롭게 들고 가서 1달을 Internship으로 이력서에 몇 줄 더 추가하고 시작해 보기.
(인턴쉽 경험 가능)
처음에 갔을 때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고 (카페, 레스토랑 서빙 등), 디자이너로서 구직활동 계속하기.
밑바닥(인턴쉽 같은)부터 시작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호주 현지 회사들은 첫 채용의 시작을 Casual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스폰받고 들어가서 Full-Time으로 일하며 안정적으로 돈 벌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일을 얼마나 잘할지, 얼마나 우리 회사에 남아 있을지 모를 외국인에게 풀타임을 주기는 회사 입장에서도 너무 모험적인 일일 것이다.
운과 실력이 모두 따라주어서 한 번에 구직할 수 있다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다. 당신이 한국에서 그러했듯, 해외에서도 몇 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비로소 원하던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시간보다, 해외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등을 토닥여줄 친구나 가족이 없고, 이 긴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타지에서는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다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레쥬메를 점검해볼 수 있는 강한 멘털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내가 원하는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있어서 반드시 플러스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 긴 터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떨어지고 좌절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과정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고, 내가 모자라서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돌이켜보면 내면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가장 크게 성장했던 시기가 바로 그 때다. 그때 내가 쥐뿔도 없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회사들을 찾아가서 Knock the door 했던 경험, 영어로 면접을 보고 나서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을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 한 회사 떨어질 때마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가다듬었던 경험. 그때는 그게 '고난과 시련'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많이 날아올랐던 시기이기도 하다.
길게 구구절절 써놓았지만, 결론은 '정신 바짝 차리고, 포트폴리오 끝내주게 만들고, 영어 공부 코피 터지게 한 다음 계획 짜서 해외취업에 도전하세요'이다.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해외취업'이라는 것을 해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국내에서 취업 잘 한 사람이라면, 해외에서도 취업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결국 '준비를 열심히 하고, 버티다 보면 얻어걸리는 일'이라는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결론은, 버티자! 버티면 다 된다. 나도 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