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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 어쩌다 산책

논산수집 01

by 피터

지역에 왔습니다. 2주째. 지역출신이 서울살이 30여년 하다 다시 지역에 왔으니 U턴족이라 할까요.

거리로 따지면 J턴쯤 되겠네요. 고향과 서울의 중간 지점, 조금 긴 꼬리 올라간 J턴 입니다.

지금 논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앞으로 2년, 조금 더 길어질수도 있고요. 연고없는 지역에서 일하려니, 사람을 알아야겠고, 사람들이 연결되며 갖는 에너지를 만들고 싶거든요.

제목은 논산수집. 1편은 동네서점 어쩌다 산책 입니다.


논산수집 01
어쩌다 산책(동네책방)
충남 논산시 시민로 258번길 8 B1

동네서점 주인은 교육관련 일을 했고, 아마도 책을 좋아했고, 그러다 책방을 냈지 싶습니다. 그러니 어쩌다,가 붙고, 산책은 뭐랄까요. 두 가지 짐작을 해보는데요. 하나는 사람들이 산책하다 들렀으면 하는 책방, 주인 입장에서는 인생의 어느 산책길에 어쩌다 만난 창업이지 않을까요.


옆 사무실은 남편의 목공방이랍니다. 어쩌다 산책 책방의 나무 인테리어는 모두 남편의 솜씨입니다. 나뭇가지 같은 책 진열대와 간단히 드립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공간 등 그 모두가 말이죠. 책 좋아하던 아내가 어쩌다 동네책방을 한다니, 어쩌다 목수된 남편이 팔을 걷어붙이는 그런 스토리. 꽤 다정하고 흥미롭습니다.


책방 문을 열면 새소리가 반깁니다. 청각을 자극하는 낯선 지저귐은 원앙앵무 한 마리가 냅니다. 앵무는 아니고 원앙이라 했던 거 같은데, 다음에 들르면 다시 물어봐야겠네요.

-원앙인데 혼자네요. 외롭겠어요

"그러니 제가 맨날 인사해주고 말을 걸어줘요"



책들은 주인의 취향으로 큐레이션했습니다. 마음을 다독이는 에세이와 그림책이 많고, 한쪽엔 유 행서들이 있습니다. 반지하 인데 볕이 잘 들어, 오전 11시엔 화분이며 책상이 만든 볕과 그림자가 참 좋습니다.

"여자 손님만 좀 있어요. 남자들은 책을 안 사던데"

-저 책 좋아합니다. 그래도 동네책방 온 건 몇 년 만이라 낯설고 반갑네요. 장사?는 잘 되나요?

"하루 1권 정도^^ 그래도 도서관 등과 협업된 바로도서 시스템이 있어 좀 낫죠. 논산은 평생학습 슬로건이 있어서 관련된 쪽은 좀 지원을 하거든요. 도서구입 말고 독서모임이나 작가강연 등에 시민이 그 지원비를 쓰게 하자, 드러면 동네서점이 더 재밌을거다, 요청했는데, 그건 항목이 달라 안 된대요ㅠ"

-참, 공무의 세상이란. 그런 걸 열어얄텐데요. 저랑 같이 어쩌다, 모임. 어쩌다,강연.. 이런 거 해보실래요?

"그럼 좋죠, 근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책방 운영도 힘에 부치는데. 에세이나 그림책을 갖고 마음치유 같은 걸 하고 싶긴 했어요"

-같이 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요. 근처에 이화서점, 논산서점이랑 같이 북페스타 해도 좋구요. 동네책방들의 연합전선!?^^

"그렇네요. 이화서점은 가장 큰 책방이고, 논산서점도 오래된 곳이죠. 동네책방들 모여 같이 하면 그거만으로 의미가 있죠"

-하하. 먼가 잼나는 일이 생기겠네요.


담엔 이걸 사야지. <바깥은 천국>. 잃어버린 골목 놀이의 기술. 우리가 잃어버린 게 골목 놀이 뿐이던가.


이날 세 권의 책을 샀다. 요 근래 책을 거의 안 샀는데, 필요한 책을 사도 온라인 대형서점 바로배송 주문하거나. 동네 작은책방에서 책을 산 건 참 오랜만이다.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 <할머니의 저녁식사> 에디션 한정판 <수레바퀴 밑에서>.



여자 손님 위주로 하루 1권 정도 파는 책방에서, 남자손님이 3권이나 사서 좀 놀란 하루였을까. 세 권 책 구입 내역을 메모하신다 했다. 대부분 1권씩 비치해서 누가 책을 사가면 그 빈자리의 1권를 또 주문하기 위해서란다. 동네 작은 책방, 책 사는 손님이 드문, 그런 곳들이 애써 해야할 기억이자 수고로움다. 내가 사간 책들을 메모한 후 이 말을 덧붙이신다.

"인터넷에서 사면 10% 정도 할인해주잖아요. 우린 그런게 없으니까, 고마운 마음에 손님 원하시면 커피를 한 잔 내려드려요. 할인 없는 것에 대한 서비스랄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저야 뭐, 감사하죠^^


어쩌다, 동네 책방을 만나 즐겁고 감사한 하루였다. 세 권의 책은 쓸쓸한 내 방 인테리어를 겸해 예쁘게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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