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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운트 Mar 28. 2022

당신을 위한 사랑과 위로의 음식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라는 첫 문장부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미셸 자우너는 엄마가 자주 해주던 한국 음식과 외할머니와 이모 등 한국 가족들과의 추억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 식자재를 쉽게 살 수 있는 대형 마트인 H마트(한아름마트)에는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아주 많죠. 김치나 미역국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 뻥튀기 같은 주전부리들, 식당에서 뚝배기에 담긴 찌개를 먹는 사람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도 몇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셸은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이, 아니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미셸과 엄마는 여느 모녀처럼 사랑하는 가운데 갈등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비난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음식을 향한 사랑은 모녀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어요. 삼겹살쌈이나 수산시장에서 먹은 산낙지, 콩나물무침이나 총각김치 같은 것 말이죠.



어느 날, 엄마는 갑작스럽게 암으로 힘든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예기치 않은 불행 속에서 미셸은 너무나 슬퍼하고 힘겨워하는데요, 엄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엄마를 그리워하고 애도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나갑니다. 아픈 엄마에게 해주고팠지만 그러지 못했던 잣죽, 한국의 할머니와 이모들을 떠올리게 하는 된장찌개, 엄마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김치 등.



이 정성스러운 음식들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추억과 응원이 들어 있는지, 한 그릇의 따끈한 밥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내내 울컥함과 흐뭇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정체성에 관해서, 가족의 사랑에 관해서, 고민 많은 여성 예술가라는 자아에 관해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간직하는 행위에 관해서 담담하면서도 솔직담백하게 써내려간 좋은 에세이입니다.


"엄마, 엄마가 옳았어, 라고 순순히 인정하고 투항하고 싶었다." - 본문 중에서




미셸 자우너는 미국 인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 Breakfast)'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입니다. 그녀가 2016년에 발표한 <Psychopomp(저승사자)>라는 앨범 재킷은 엄마의 20대 시절 사진이라고 하는데요 이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음악을 찾아 들으니 기분이 색달랐어요. 책 속에 들어 있는 책갈피 QR코드를 통해서 제공되는 플레이리스트도 꼭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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