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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운트 Mar 31. 2022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스테이션 일레븐》,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어느 극장에서 연극 <리어왕>이 공연중입니다. 갑자기 주인공인 배우 아서가 무대에서 쓰러집니다. 관객 중 한 사람이 나서서 심폐소생술을 해보았지만 끝내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그즈음, 미국에 착륙한 여객기를 통해 치명적인 '조지아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곧 인류의 대부분이 사망합니다. 

《스테이션 일레븐》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이 두 사건과, 문명의 종말 20년 후를 오가며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우리의 삶은 무엇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소설입니다.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그렇듯이 문명과 인간이 사라져간 세계는 암울하고 차갑습니다. 그런데 《스테이션 일레븐》에는 이채롭게도 그 와중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하며 다니는 '유랑극단'이 등장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시대에 <한여름 밤의 꿈>이라니, 호사스럽기도 하고 무의미하게도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비행기도 자동차도 스마트폰도 사라진 시대에 결국 남아 사람들을 이어주고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은 셰익스피어이고 그래픽노블이며 신문과 잡지이고 '문명박물관'이라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인간이 거의 모두 사라진 세상의 아름다움. 타인이 지옥이라면, 사람이 거의 없는 세상은 뭘까? 머지않아 인류가 멸종되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커스틴은 슬프기보다는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데도 많은 생명의 종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거기에 하나 더 보태는 게 뭐 어떻다고. 그나저나 현재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 본문 중에서



예술과 문학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가득한, 이 서정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을 권해드립니다. 지난번  어느 여름밤에 함께했던 아운트 북클럽도 참 좋았기 때문에 또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도 싶네요.

참, 최근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테이션 일레븐>도 공개되었더군요. 왓챠에서 볼 수 있다던데,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합니다. 주말에 찾아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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