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최승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 자체가 '최승자'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 같아요. '최승자'를 몰랐던 사람이라면 표지의 이 강렬한 사진으로도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최승자 시인의 첫번째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1989년에 첫 출간되었다가 32년 만인 지난해 복간되었습니다.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던 시인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시 <일찌기 나는> 중에서)고도 했던 시인의 산문집이니만큼 대부분의 글은 불안과 고독, 죽음에 대해 언급합니다. 또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고 처연하게 고백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도 희망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확실한 절망을 택'했을 뿐이지만요.
"그리고 잡균 섞인 절망보다는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산다." - 본문 중에서
1980년대 '가위눌림'의 시대를 또박또박 싸우며 살아왔던 시인은, 오래전부터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으로 독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시가 되었던 그 아픔들을 이 산문집으로나마 조금 들여다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