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질 것 없이 답답한 시간의 파도만 치는 날이면
엄마가 부르던 뽕짝을 낮게 불렀다.
요즘 이런 노래 누가 부를까
큰언니도 안 부르는데.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소리가 새어나가 옆에 있던 집사가 듣고는
울 언니도 부르던데...
못 들은 척 몇 년이 지났다.
교회전체에 부탁하는
그 집사의 언니가 다 죽게 되었다는
급한 기도요청이 들어왔다.
손을 먼저 놓은 건 보호자가 아니라 본인이었다.
줄을 끊고 가려는 작심
죽을병이 아닌 데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예민해 보였던 그 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중얼중얼 기도하다 하나 둘 우리는 울기 시작했다.
절망이구나
질병보다 강한 절망
손을 뻗어 잡아달라 하기
내가 죽을 지경이다
살려달라 말하기
할 수 없었구나
먹고사는 일에 걱정 없어도
이미 두 손이 그놈의 절망을 부둥켜안고 있기에
돌아오고 싶어도 안 되는 거였구나
아니 절망이 두 손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거겠지
여럿이 그녀가 붙들고 있는 형체도 없이 고약하고 찐득한 것을 어떻게라도 씻겨주고 싶어 같이 울며 기도했다. 믿음이 있다는 사람도 절망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젤 무서운 건 갑자기 찾아오는 절망감이다. 조심해야 한다 혹시 지금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