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면 색칠이 너무 어려웠다. 밑그림은 제법 그려도색칠을 마치면 망치곤 했는데 가방을 짜게되면서 단순하게 많아야 두세 가지 색실을 사용하니까 아무런두려움 없이 맘껏 색을 쓸 수 있었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색의 공포를 이겨냈다고나 할까. 뜨개질은 고맙게도 나의 만만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이리가라고 이랴 저리가라고 저랴 소를 모는 농부가 이런 맘으로 밭을 갈았을까.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어보자.
무늬는 단순하게 하고 색깔만 조금 변화를 주었다. 물건을 넣을 만하게 제법 부피가 있게 했다. 그리고 안정감을 주려고 좀 귀찮아도가방 안쪽으로 틀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장치를조금 더 해주었다. 액세서리 개념을 벗어나 일상에 자주 들어도 형태가 잘 유지되는가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나니 누구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안정감있게하려면 어떻게 고이거나 받쳐야 한다는 것을 알 게 된거같다.
뜨개질 이 년 차가 되면서 주위 친구들은 이제 감탄도 칭찬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그게 나는 더 좋고 편안했다. 더 이상 그들을 위로하려 내 소중한 작품들을 선물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이때가 나 혼자 감탄하는 소위 자뻑의 시기로 들어갔던땐가 보다. 부지런히 나를 위해 봉사하고 끊임없이 노동을 제공하여도 아무 불평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시간들이 이제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문을 열려고하는 세상의 시간과 얼추 맞물려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