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집 밖에는 햇빛이 뜨겁고 공기는 건조해서 괴롭다가도 집안에 들어오면시원한 공기가차분하게 퍼져 있어 살만했던 쿤밍.선풍기 없이도 안심하고 여름은 보낼 수 있지만 봄가을 그리고 겨울은 썰렁한 느낌이 가시질 않아 한국의 안방의 온기가 그리워져 전기판넬을 바닥에 깔고 살았다. 색깔도 장판색이라 온돌 느낌이 나고 한국생각도 덜 나고 살만했다. 그런데 어느 겨울에 아파트단지 전체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일주일을 온기하나 없이 지내게 됐다.점점 냉장보관되는 느낌이고 겁도 나서 구호의 손길이 있다면 받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차라리 뜨거운 여름이 나았다. 그늘만 찾으면 그리고 한 낮만 잘 피하면 되니까. 신기하고 다채롭던 쿤밍에서의 생활도 빛을잃고 생기를 잃어 갈 때쯤 우리 부부는 애들을 집안일 도와주는 보모에게 맡기고 처음으로 여행을 갈 생각을 했다. 정전되어도 걱정 없는 여름이 되었기에 애들을 두고 떠나기에 안전했다. 주일교회예배 후 밥 먹으며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루오핑 이란 곳이 유채꽃밭으로 가볼 만한 곳이라는 얘길 들었고 윈난 성 사람들이 식용유로 쓰는 유채기름 대부분이 그곳 기름일 거라고 하면서 그 넓이가 아주 넓다했다.머릿속에 넓은 유채밭을 상상하며 우리는 느릿느릿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 몇 번 생각해 봐도 기차를 탔는지 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루오핑에서 내려서는 또 미엔빠오차를 수배해서 갔는지 모르겠는데 그다음 장면에서부터는 우리만의 영원히 잊히지 않는 루오핑 여행이 시작되었다. 차에서 내려 어디로 갈까 길을 찾던 우리가 갑자기 멍하니 바라보는 앞쪽에는 그저 맨바닥 길이고 아무것도 없는 공터가 덩그러니 펼쳐져 있었다. 혹시 저쪽으로 넘어가면 꽃이 있냐고 물으니 거기도 없고 아무 데도 없단다. 우리가 늦게 왔단다. 꽃이 다 졌단다. 꽃뿐만 아니라 마른 줄기 잎사귀도 흔적을 감춰버린 팔월이라 흙바닥만 보이는 루오핑은 넓이를 짐작도 할 수 없었다.사오월에 한창인 유채꽃을 보러고 한여름 팔월에 갔다는 걸 그때에야 알아차렸다. 남편은 조용한 사람이고 나는 생각이 짧다.
둘이서 만들어낸 이 여행의 후기는 이후에 오래오래 우리의 모자람을 살짝살짝 건드리면서 기억 속에 머물렀다. 그런데 강산도 변할 이십 년이 더 지난 얼마 전 우연히 EBS에서 루오핑을 보게 되었다. 티브이를 켜 놓은 채 왔다 갔다 집안일을 하다가 길지 않은 순간에 보게 되었다. 얼마나 넓던지 얼마나 반갑던지 얼마나 바보스러웠는지 루오핑은 몹시 넓은 유채꽃 평원이었다. 밭이 아니라 들판인 듯 언덕인 듯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노랗고 파란 꽃 들이 일렁일렁 참 보기 좋았다.들판에 꽃들을 뿌려 놓고 바람이 노란 꽃 위에 앉고 파란 잎들이춤을 춘다. 똑똑한 사람들이 봐도 좋아 보일 것 같았다. 방송은 여러 번 재방송도 하는데 이제야 보게 된 거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제 찍었는지 알려주지 않는 방송국이 그날은 그저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우리가 일삼던 바보 같은 에피소드들의 연제가 끝이 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휴대폰에는 쿤밍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았었는데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새 폰으로 바꿀 때 중국폰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래서 남은 사진이 많지 않고 사진이 없으니 기억이 절로 희미해지고 잊혔다. 다행이다.루오핑은 그래도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