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리나 Oct 15. 2024

엄마가  화가 났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삼삼오오 즐거운 행렬을 이어 걸어가며 멋진 나무가 늘어 선 공원을 감상하고 있는데 어디서 수도꼭지 고무호스가 갑자기 빠져 물벼락 치는 듯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니 이리 안 오나! 거 서랏!! 언니로 보이는 청년이 어쩔 수 없이 중학생 같은 동생을 엄마 앞에 두고 빠진다. 좀 있다 키 작고 몸집이 단단한 아버지로 보이는 아저씨가 큰 언니 둘과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며 와그라노? 무슨일이고? 하니 숙제 어쩌고 저쩌고 하며 가는데 나랑 더 멀어져서 듣지를 못했다. 엄마 앞에는 막내로 짐작되는 여자아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엄만 여행도 할 겸 막내 숙제도 도와 줄 겸  온 가족을 끌어모아 왔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내가 파토를 친 거고 엄마는 봐주질 못하고 화를 내버린 것이다. 묻는 말에  답도 않고 시종일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겠지. 그 꼴을 한 두 번 까진 못 본 척해줬는데 딱 걸려 터져 버린 거야. 막내딸이 심통을 부린 것도 나름 어설픈 이유가 있을 터이고 엄마가 딸의 버릇을 잡겠다고 난폭한 방법을 선택한 것도 계산 빠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족의 일은 반복의 반복이다.  흐르는 강물  수많은 물 살이 치고받고 쓸고 할퀴고 비웃고 질투하지만 함께 섞여 강이 되어  변함없이 시간마다 그 자리를 만지고 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해지면 최선인 것이 가족의 일이다.

가끔 엄마들이 갑자기 노력할 때가 있다. 불쌍하리  만큼 처절하게 노력하는데 가족들과  행복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거나 조금 더 잠시 가족모두에게 행복스러운 반나절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 감독하고 연출을 하려 한다. 그럴수록 아무도 협조하지 않고 엄마의 감정은  홀로 산을 넘는다. 엄마는 절망한다.

 잘 나온 가족사진 한 장  또는 행복한  반나절은 엄마에게는 꼭 집에 두고 장식하고 싶은 이쁘고 비싼 고급접시 같은 것이다. 엄마의 소원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젊고 이쁘던 엄마는 점점 느려지고 조용해진다.

엄마의 장식장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무심코 올려놓은 청구서나 약봉지가 간격도 없이 붙어 있을 것이다.

엄마는  알게 된다. 행복은 계산으로도 안되고 연출로도 아니 된다는 것을. 만져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행복은 최고로 정교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가 절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고급접시들을 깨 버렸으면 좋겠다. 다루기 힘든 너무 신경 쓰이는 별 필요도 없는 그것을  엄마가 깨버린다면 얼마나 많은 편안함이 몰려올까. 얼마나 자유스러운 말들이 오고 갈까  화난 엄마에게 그리고 옛날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엄마야 그  고급스러운 접시 다 던져버려  깨버려  그리고 나면 불퉁 강아지 같은 딸도 귀엽게 보일지도 몰라.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는 나는 모든 순간을 최악으로 망쳐버릴 때가 많았었다.  인생이 정교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나는 평화를 맛보았다.

마침내 정교하지 않은 두리뭉실한 것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느리고 답답하고 숨기고 미루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과  어우러져 사는 방법이 있다. 이전에는 무조건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면  이젠 나를 위해  되어지는 대로  살아간다. 나의 수고는 아무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이전 16화 늘 싸이렌이 불까 긴장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