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 아이가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아까웠다. 첫째 아이가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청소년 문화유산 해설사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을 때 첫째 아이에게 지금 딱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외국인에게 영어로 해설을 해줄 수 있도록 청소년 문화유산 해설사를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본격적인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기 전 한국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어휘도 늘리고, 영어공부도 되는 일석삼조의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조카가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적극 추천했다.
같이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조카의 말에 첫째 아이는 별 고민없 그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첫째 아이는 어떤 마음의 준비 없이, 그저 사촌이 하는 활동이 좋아 보여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본과정을 듣기 전 교양과목처럼 기본으로 들어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두 과정을 빠르게 마치기 위해서는 매주 주말 수업을 들어야 했다. 두 과정을 빠르게 마치고 본과정 입과 시험도 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청소년 문화유산 해설사 본과정에 들어갔다.
첫째 아이가 두 기본과정을 듣는 동안은 주말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숙제도 없고 그냥 가서 듣기만 하다 보니 부담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느 날 경복궁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가
"엄마 왕의 수라상에는 몇 개의 반찬이 올라가는지 알아?"
"글쎄?"
"12개, 그래서 12첩이래, 근데 거기에 국, 김치는 포함이 안된대, 그럼 양반은?"
내가 잘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웃으며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엄마 서민은 3첩 반상을 먹는데 국, 김치가 포함이 안돼. 그럼 우리는 서민보다도 못하게 밥을 먹고 있는 거다"
한 끼 한메뉴 (국이면 국 하나, 요리를 하면 주메뉴 하나)를 해왔던 나는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왕의 반찬개수로 빌드업을 한 것이었을까?
괜스레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한국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던 첫째 아이가 수업을 들으면서 내용에 관한 이야기들을 할 때면 신기했다. 아이가 수업을 재미있게 듣고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본과정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재밌는 에피소드는 더 이상 없었다. 이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공부하기를 원하는 곳이었다. 학부모코칭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처음 몇 주동안 아이도 나도 헤매고 있었다.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리서치와 한국어/영어 해설 시나리오 쓰기를 직접 하면서 해야 할 공부가 정말 많아졌다. 말레이시아에서 한 번도 이런 강도의 공부를 해본 적 없던 첫째 아이는 분량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제대로 계획을 세워야 숙제 누락 없이 해낼 것 같았다. 아이가 이주정도 지나면서 계획을 나름 열심히 세웠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의욕이 앞서 너무 열심히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글로 해설 시나리오를 쓸 때면 영어 해설 시나리오를 쓸 때에 비해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한국어 어휘가 부족해서 시나리오 쓰는데 힘이 드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많이 써내는 것을 목표로 쓰라고 조언해 주셨다.
하루 반짝 열심히 하고 그다음 날은 풀어지고 이런 날들이 지속됐다. 계획대로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나는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면서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왜 항상 아이가 해나가야 할 부분까지 지레 내가 먼저 걱정하며 나서는지 모르겠다. 머리로는 기다려줘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이해했던 데로 행동에 옮겨지지 않았다. 아이를 자꾸 다그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는 더 하기 싫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밤마다 일찍 해놨으면 늦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반복하며 본과정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가끔씩 아이가 힘들다면서 터져버리면 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미리 준비하고 이미 일찍 해놓으라는 이야기를 했던 터였다. 무시했던 것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며 우는 아이를 달래주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방에서 한참을 울다 속이 시원해졌는지 다시 나와 안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안아주고 나면, 다시 남은 숙제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이게 맞는 것인지 계속 의문을 가졌다.
그러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은 한국사도 잘 알고 다 잘하는데 자기는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글로 되어 있는 자료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해설시나리오를 쓰려고 하니 암담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뒤로 자료를 함께 찾고,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해주었더니 조금 나아졌었다. 하지만 여전히 낮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과 싸움. 아이가 할 수 있음에도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좀 더 생각하면 좋겠다."
"이런 내용을 담으면 해설 내용이 훨씬 풍부해질 것 같아."
나는 계속해서 아이에게 피드백을 준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첫째 아이가 이제 중학교1학년이라면서 어른도 하기 힘든 것을 하고 있다며 아이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물었다.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어느 순간부터 말레이시아에서 항상 잘해왔던 아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는 기대가 커졌던 걸까? 나는 이런이런 부분을 보완하면 더 좋겠다는 이야기를 매 순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와 또 부딪히는 일이 일어났다. 이야기를 더 하다가는 말이 함부로 나갈 것 같아, 알아서 하라고 하고는 일찍 침대에 누었다. 아이는 알아서 하라는 말은 자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하는 이야기지 않냐고, 자기는 그 말이 너무 싫다면서 방문을 닫았다. 그런데 정말 혼자서 남은 과제를 끝냈다. 그것도 내가 도와줬던 전날보다도 더 빠르게. 그러면서 첫째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혼자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부딪혔던 것이 내가 참견을 하고 아이가 하는 행동을 컷 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