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와 수학 문제집으로 갈등이 있었던 이후, 아이는 여전히 짜증이 많고, 하루 종일 음악만 들었다.
"음악 들을 때가 제일 스트레스 안 받아."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하교 후 집에 와서 4~5시간을 음악 듣기에만 빠져있는 모습이 선뜻 이해되진 않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쌓아왔던 좋은 습관들이 눈앞에서 하나씩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사춘기에 대한 글과 영상을 찾아보며, 이 시기를 어떻게 함께 지나야 할지 고민했다.
정보는 넘쳐났다. 전두엽이 아직 미성숙하고, 대뇌변연계가 활발히 작동하는 시기.
그래서 감정은 요동치고, 부모와 또래의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이해와 포용,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들.
머리로는 다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 속,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짜증을 내고, 감정을 쏟아내는 아이를 마주하면 나 역시 감정이 흔들렸다. 참으려 했지만, 때론 함께 폭발해 버리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지쳤다.
“니가 그렇게 키웠잖아”
주변의 한마디가 마음을 건드렸다. 기분 나쁘게 하려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가시 같은 뉘앙스가 나를 찔렀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좋은 기억들을 심어주고, 잘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마저 잘못된 방식이었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더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여행하고 활동하며 함께 보낸 시간들이 분명 즐거웠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 선택을 ‘희생’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을 그렇게 해석하게 된 건 아닐까.
그럼 앞으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사춘기를 맞은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썼지만, 정작 내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아이와의 부딪힘은 더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혼란과 예민함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의 감정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 조용히, 나의 마음을 들어주기를,
엄마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을 안고, 지난가을을 조용히 지나왔다.
말레이시아에서 보낸 5년 동안 사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면, 선명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형형색색 물들어 가는 가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청명한 가을 아침 공기조차도 내 안엔 쉽게 스며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기 위한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정작 나 자신을 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