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
“태도에서 모든 게 비롯돼.”
“계속 이렇게 하면 그만둘 거야.”
나는 아이를 다그치는 의도가 아니었다.
다만, 좀 더 잘 해내길 바랐고, 지금보다 더 책임감 있게 자라길 바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매일같이 내뱉는 말들이 오히려 아이와의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챗지피티에 도움을 받아 내가 아이에게 자주 사용하는 말을 점검해 보았다. 그러자 놀랍고도 부끄러운 사실이 드러났다.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
→ “네가 이 활동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태도에서 모든 게 비롯돼.”
→ “지금 네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
“엄마는 여기서 그만하고 싶어.”
→ “엄마도 이 과정을 응원하고 싶은데, 솔직히 조금 지치고 있어.”
“계속 이렇게 하면 그만둘 거야.”
→ “지금 이 방식이 우리 둘 다 힘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서로 덜 힘들 수 있을까?”
“엄마는 더 이상 이렇게 가고 싶지 않아.”
→ “너랑 이 과정을 계속 함께하고 싶어. 그런데 엄마 마음도 함께 나누고 싶어.”
“이러려고 서포트하겠다고 한 게 아니야.”
→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성장하는 걸 보고 싶었어. 지금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든지 말해줄래?”
이렇게 보니 분명했다. 내가 아이에게 던진 대부분의 말들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었구나.
솔직히, 조금 창피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 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모든 중심에 나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움직여야 하고,
내가 정리해줘야 하고,
내가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아이의 시도는 나의 효율성 앞에서 자주 꺾였다. 그걸 ‘지도’라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믿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결과를 확인하려 들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가 움직이길 바랐다.
결국 내가 보던 건 아이의 눈빛도, 숨소리도, 마음도 아닌
그저 완성된 과제와 정리된 계획표였다.
첫째 아이에게 엄마는,
“그건 안 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늘 ‘불허의 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말을 바꾼다는 건 단지 예쁜 단어를 고르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을 바꾸고, 중심을 바꾸고,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또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다짐한다.
아이의 시도를 지지하는 말,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말,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듣는 말로
내 언어를 바꾸기로.
한 번에 되진 않겠지만,
매일 조금씩,
내 마음도, 말도
함께 자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