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반응해줘야 할까?
청소년문화유산해설사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아이도, 나도.
최종 수료심사 결과는 '순통약조불'이라는 다섯 글자로 구분되었다.
‘순’과 ‘통’은 온전한 합격,
‘약’과 ‘조’는 에세이 제출을 조건으로 한 조건부 합격,
그리고 ‘불’은 말 그대로 불합격을 의미했다.
아이의 결과는 ‘약통’.
에세이를 하나 더 제출해야 하는 조건부 합격이었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합격’이었다.
이 과정을 준비하며 아이는 세 번의 시험을 치렀다.
문화유산 해설을 위한 실전 시연, 이론 필기, 그리고 최종 심사까지.
부담도 많았을 텐데, 매 순간 성실히 준비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솔직히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걱정했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붙잡고 있는 시간만 많은 것이라는 생각에
집중하면 새벽까지 하지 않아도 끝낼 수 있는 것을
늦게 시작하니 늦게 끝난다고.
늦게 끝나니 스스로 정말 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느껴졌었다.
이렇게 공부해서
혹시나 '불통'이면 어쩌지? 지금껏 공부해 온 것이, 그 마음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떡하지.
혹시 통과되더라도 이렇게 공부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 상황, 저 상황 모든 상황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생각보다 통과했다는 자체에 행복해했다.
결과를 보고 나서,
“에세이 하나만 더 쓰면 되는 거잖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성취감을 느낀 것이리라.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잘 해내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너무 몰랐던 건 아닐까.
아이와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아이의 입에서 자주 나오던 말.
“엄마는 내가 대학원 수준으로 공부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그 말이 불쑥 마음을 찔렀다.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도,
학년 말이면 ‘1년 동안 가장 발전한 학생’에게 주는 상을
기다렸다가 결국 받지 못했던 아이.
워낙 평소에 잘하던 아이였기에
단기간의 눈부신 변화는 정말 어렵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그 상은 여전히 ‘받지 못한 어떤 것’이었다.
그러다 6학년 마지막,
커뮤니티 상을 받고서 “처음 받아본 상이야” 하고
환하게 웃던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어진 말.
“엄마, 난 아직 영어랑 수학 상은 한 번도 못 받아봤어.”
그 말 앞에서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럴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그런 상은 중요하지 않아’ 하고 넘어가야 할까.
혹은, ‘넌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더 나은 성장을 독려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그 정답을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과정을 지나며 하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이의 속도는
나의 기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앞으로 향해 나아가는 속도여야 한다는 것.
아이에게 상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해냈다는 경험,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따뜻한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문화유산해설사 과정을 통해
아이도, 나도
‘합격’이란 단어보다 더 큰 것을 배운 것 같다.
이제 아이는 또 하나의 에세이를 쓰게 될 것이다.
그 글 안에 담긴 아이의 시선과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읽어주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아이의 속도에 맞춰
응원하고, 기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