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요즘 스너글 섬유탈취제 향이 좋다며 하나 사서 자기 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향이 은은하게 남는 게 좋다며 옷장과 침구에, 심지어 가방 속에도 뿌렸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섬유탈취제에 포함된 화학성분이 늘 마음에 걸렸다.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알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항상 "적당히"의 트랩 안에 갇히게 된다.
며칠 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무 자주 뿌리지는 마. 성분이 다 좋은 건 아니라서.”
아이의 얼굴이 금세 굳었다.
“그럼 안 쓸게.”
말끝은 딱딱했고, 이어진 말은 날카로웠다.
“갔다 버리면 되지? 내가 안 좋은 것 몰라서 쓰는 것 같아? 나도 알아. 그래도 향이 좋고 쓰고 싶으니까 쓰는 거야. 몸에 안 좋다고 하면 다 안 해야 해? 엄마는 내가 뭘 하려 하면 다 안 된다, 하지 마라, 안 좋다 그런 얘기만 해. 엄마가 나한테 그냥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
나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안 좋은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알려주고 몸에 안 좋으니 너무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게 잘못된 건가?"
"엄마가 과학을 몰랐으면 좋겠어. 집에 오면 너무 답답해. 엄마는 나한테 너무 신경을 많이 써. 신경 좀 안 썼으면 좋겠어. 빨리 독립하고 싶어.”
“진짜 독립의 의미를 아는 거야? 나가서 혼자 살면서 마음대로 하는 게 독립이 아니야. 진짜 독립은 너 스스로 생활이며 공부, 네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그래서 20살엔 독립할 거야. 그리고 내가 돈 벌면 나 혼자만 쓸 거야. 나를 위해서만."
"그래 좋은 생각이야. 부모님한테 손 안 벌리고 스스로 잘 사는 건 진짜 잘하는 거야."
첫째 아이는 나와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정말 나는 아이의 행동과 선택을 너무 많이 제한해 왔던 건 아닐까.
돌아보면 나는 늘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계단 내려갈 때 조심하라고 말하고, 새 음식을 먹기 전에 성분표를 확인했다. 시험공부가 덜 됐을까 봐, 친구 관계가 어렵진 않을까 봐, 앞날에 실수가 생기진 않을까 봐. 걱정은 늘 내 몫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언제나 ‘조심해’, ‘하지 마’, ‘이건 안 좋아’라는 말로 아이에게 흘러갔다.
그러니 아이가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답답함은 결국 “엄마가 과학을 몰랐으면 좋겠어”라는 말로 터져 나왔나 보다.
요즘 아이는 자꾸 독립이라는 말을 꺼낸다. 스무 살이 되면 바로 나가 살 거라고, 혼자 살고 싶다고,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예전엔 그 말이 서운했다. 나와 떨어져 살고 싶다는 뜻으로 들려서.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이제 엄마도 나에게서 독립할 때가 된 거야’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 단순히 뭔가를 허락해 주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움켜쥐고 있던 걱정과 통제의 마음을 내려놓는 일임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게 참 어렵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덜 말했다. 섬유탈취제를 뿌리며 기분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의 향기가 방 안에 퍼지듯, 아이의 선택과 감정도 그저 그렇게 흘러가게 둬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