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수업
한국에 돌아와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낯설고 빠른 한국의 일상에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생각보다 씩씩하게 잘 해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다행히 1학기엔 자유학기제 덕분에 시험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난관이 나타났다.
바로 진로 수업이었다.
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나만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없어. 다른 애들은 벌써 다 정했대.”
그 말에 나는 당황이 됐지만 솔직히 이야기했다.
“엄마도 아직 하고 싶은 걸 찾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천천히 찾아가도 되는 거야.”
그랬더니 아이가 조용히,
“엄마가 아직 하고 싶은 걸 못 찾았다고 하니까,
그게 나한텐 위로가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뭔가 멋진 답을 해주지 못한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니.
완성된 어른보다, 여전히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
사춘기 아이에게는 더 진짜로 느껴졌나 보다.
진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대부분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바이올리니스트, 변호사, 의사, 유튜버, 웹툰 작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은 넘쳐났지만,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그리 많이 던져지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진로 수업이 ‘직업’보다는 ‘철학’에 가까웠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이름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싶은지 묻는 수업.
아이에게 진로는
단순히 “네가 되고 싶은 게 뭐야?”가 아니라
“넌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여?”
“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어떤 사람을 보면 멋지다고 느껴?”
그런 질문으로 시작되면 좋겠다.
이 질문에 금방 답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살아가며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도 충분하다.
엄마인 나도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조용히 헤매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과정 자체가 진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 아이에게 오늘도 말해주고 싶다.
“서두르지 마.
너의 속도로, 너만의 방향을 찾아가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