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는 어려워

by 유장래

다정이는 시간당 한 번 꼴로 눈물을 터뜨렸다. 쉬는 시간에 놀다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울었으며 급식을 먹다가도 흐느꼈다. 어제저녁 찐빵이가 죽었다고 했다. 찐빵이는 다정이네 애완 앵무새다. 공원에서 데리고 놀다가 고양이에게 습격을 받고 크게 다쳤는데 결국 생을 달리 한 것이다. 눈앞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앵무새-그것도 가족이었던-를 보는 일은 10살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나에게도 핸니 7세가 있었다. 이 햄스터만큼 누군가를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한 적이 있을까. 어느 날 핸니 7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 느꼈던 불안감, 차갑게 굳어버린 핸니 7세를 묻어주러 가다가 길바닥에서 쏟은 눈물을 기억한다. 다정이 울음소리가 수업에 방해가 되어도 별말 않고 화장실에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핸니 7세 덕분이었다.



며칠 뒤 시연이가 눈물을 흘릴 때 말없이 다정이를 다독여주던 멋진 선생님은 온데간데없었다. 에어 바운스에 깔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해하지 못했다. 공기 기둥이 아래 파묻히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인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라떼는 에어 바운스 같은 놀이기구도 없었단 말이야. 게다가 시연이가 울음을 터뜨린 건 30분 뒤, 에어 바운스는 진즉에 끝나고 판 뒤집기 게임 중일 때였다. 갑자기 울어버리니 무심한 선생님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얼마나 놀랐으면 이제야 눈물이 날까. 갑자기 큰 건축물에 깔렸으면 충격적일 수 있지. 나도 머리로는 다 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름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시연아, 사람이 살다 보면 갑자기 힘든 일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어. 시연이는 그게 오늘이었던 거야. 선생님이 봐온 시연이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음. 무섭다는 10살에게 할 말은 확실히 아니었다. 역시 공감이 담기지 않은 위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전두엽이 덜 발달해서인지 공감 능력이 바닥을 맴돌았다. 그런 내게 J는 매너 없는 친구였다. J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당일 약속 취소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 말고 푹 쉬어. 대답이야 그렇게 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통사고 등 돌발 사고가 있었나요? 아니오. 골절 등 거동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니오. 몸이 ‘좀’ 안 좋은 것은 대체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종류의 투명 질환은 건강보다는 정신력의 문제였다. 꾀병이라는 소리를 한번 길게 해 봤다. 누군 아프다는 핑계를 몰라서 못 쓰는 줄 아나. 치사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건강했었고, 그래서 오만했다.



무병의 축복은 영원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예전과는 달랐다. 소화력이 떨어져 복통에 시달리는 날이 늘었고 정혈통이 생겨나는 식이었다. 기운 없는 상태에서 감기 몸살을 직격으로 맞았던 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지금 무리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약속인걸.



참고 참다가 당일이 되어서야 상대에게 연락을 보냈다. 자기 관리 운운하기에는 몸이 보내오는 경고가 뚜렷했을뿐더러 약속에 나가더라도 죽을상만 하다가 돌아올 것 같았다. J 생각이 났다. 아, 미안함에 끝까지 버티다 보면 약속 당일이 되어버리는구나. 겁나 아프지만 병명이 없으니 ‘그냥 좀’ 몸이 안 좋다는 표현밖에 쓸 수 없구나. 걱정 말고 푹 쉬어. 그날 이후로 아프다는 친구에게 건네는 이 말은 진심이 되었다.






살다 보니 ‘절대’라는 단어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절대 술에는 입도 안 대겠다 다짐했던 시절이 있지만 이제는 수입맥주를 즐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던 친구가 지금 보니 안쓰럽기만 하다. 대부분의 일들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철은 없고 고집은 많았던 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간신히 이해해 가는 중이다.



친구이자 수험생인 B는 요즘 헬스에 빠져 있다고 고백했다. 시험공부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헬스로 푼단다. 그래, 건강한 생각이다. 문제는 B가 헬스장에서 매일 2~3시간을 보낸다는 거였다. 음... 하루에 5시간씩 자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나로서는... 생소한 논리였다. 하마터면 차오르는 한심함을 가득 담아 조언을 가장한 독설을 퍼부을 뻔했으나, 다행히도 몇 년 사이에 나는 비교적 근사한 어른이 되었다.



나는 B의 상황이 되어본 적 없으며 공부 스타일이 B와 다르다. 내가 뭐라고 B의 공부 스트레스 푸는 방식이 불합격을 부르네 마네 참견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공감과 조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 이제 우리 반 아이들에게만 잘하면 되겠다. 시연이의 두려움에 공감할 수는 없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공포 포인트를 가진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시연이에게 이렇게 말해줘야지. 많이 무서웠구나. 이리 와, 선생님이 옆에 있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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