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온라인 수업의 실태를 고발합니다

by 유장래

반복되는 일상.

참 매력없고 숨막히는 단어다. 반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탓인지 지루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내 삶이 그렇다. 출퇴근, 저녁 먹고 풋살, 잠시 글을 쓰다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하는 인생. 본의 아니게 칸트 수제자가 되어 버렸다.


같은 일들이 놀랍도록 되풀이 중이지만 내 삶은 나쁘지 않다. 그 반복되는 일마저 마음처럼 안 되는 게 인생인 것을. 원하는 대로 공을 보낼 실력이 있었으면 진즉에 축구선수를 했을 터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창작의 고통, 읽어보니 참 따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 때 느껴지는 자괴감에서 벗어나는 날은 드물다.


누군가에게는 고리타분해 보일 일상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돈, 시간, 체력의 자유를 고루 갖춘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반복되는 인생은 충분히 즐거운 걸.





온라인 수업 역시 ‘반복되는 일상’과 비슷한 종류의 단어다. 코로나 시대가 되며 흔하게 보이지만 그다지 긍정적 어감은 아니다. 대면 수업의 차선책 같은 느낌이 짙다. 초등이라는 단어와 합쳐 초등 온라인 수업이 되면 아이들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기초 학력은 쭉쭉 떨어지고 있는 비운아들이 떠오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애들이 발표를 잘 못한다. 읊조리듯 말해도 또렷하게 들리는 온라인과 다르게 오프라인에서는 여럿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해야 하는데 이걸 어려워한다. 선생님이 애타게 부르든 말든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는 지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와 우리 반 아이들)의 시간이 단순히 무기력으로 가득 찬 수업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곳에도 나름의 재미와 교류가 분명 있었다.






처음으로 온라인 협동화 그리기를 했던 날에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비규환.

“선생님, 주환이가 자꾸 제 그림 위에다가 색칠해요.”

“혼자 그렇게 크게 그리면 어떡해. 내가 그릴 자리가 없잖아.”

공유된 화이트보드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필요로 했다. 자기 딴에는 친구를 도와준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을 누군가는 영역 침입으로 받아들였다. 활동을 마무리 할 때쯤 화면 너머로까지 흉흉한 기운이 전해져왔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끼리 알아서 한 사람당 그림을 어느 정도의 크기로 그릴지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다. 남이 그린 그림은 허락을 받고 색칠을 하는 분위기가 금세 생겼다. 웬만한 어른들보다 성숙한 결말이었다. 학기가 끝나갈 즈음 우리는 꽤나 그럴 듯한 산(山) 풍경화를 그릴 수 있었다.




온라인 모둠활동은 뜻밖에도 대면 수업보다 더 나았다. 학교에서 모둠활동을 시키면 오디오가 겹치다보니 금세 시끌벅적해지곤 했다. 모두가 조용하게 한 명씩 말한다고 쳐도 모둠이 6개이면 6개의 목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는 2단계로’를 아무리 외쳐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소회의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에 들어가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VR 탐방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모둠별로 선사유적지 곳곳을 탐험하며 주어진 문제를 푸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온라인 모둠 수업은 극강의 효율을 자랑했다. 모둠활동에 온전히 집중한 채 과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쉬는 시간이면 컴퓨터 화면에 아이들의 다양한 일상이 등장했다. 강아지, 고양이, 도마뱀 등등 여러 반려동물들은 귀여웠고 슬라임이며 푸시팝을 들고 와 선보이는 모습에서는 요즘 아이들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팬티바람으로 옆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좋았던 장면만 기억해보기로 하자.


학생들이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보다보니 나도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운이가 나눠준 준비물을 매번 잃어버려도 예전처럼 한숨이 나오진 않았다. 장난꾸러기 세 살배기 쌍둥이들이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직접 본 덕분이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같은 공간과 경험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온라인 수업은 다시 옛 이야기, 또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 시기를 암흑기나 기초 학력 저하의 주 원인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온라인 수업을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덮어놓고 나쁜 시간으로만 추억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안에는 온라인 나름의 매력적인 일들도 분명 있었으니까. 온라인 채팅이 아니었다면 세연이가 용기를 내서 발표를 할 수 있었을까? 대면수업 때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으니 어려웠다고 본다.


온라인 수업은 저질, 무기력, 답답함 같은 단어와 동의어가 아니다. 그 안에도 나름의 반짝임이 있음을 이야기해 본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과 재미를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전 06화우는 아이는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