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은 좋은 교사는 아니다.
교직 생활을 하며 깨달았다. 흔히 좋은 사람이라 말하는 성품과 좋은 교사가 가져야 하는 성향은 사뭇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이거다. 남의 일에 오지랖이 필요한 것.
친구가 독일의 수도가 뮌헨이라고 말할 때는 듣고 넘기지만 학생이 그런다면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라고 확실하게 짚어줘야 한다. 민망해할 상대방의 마음보다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이 먼저다. 친구가 김밥에서 오이를 파낼 때 모르는 체하는 건 쿨한 친구겠으나 처음 본다는 이유로 키위를 입에도 안 대는 학생을 방치한다면 좋은 교사는 아니다.
분명 사회에서는 내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남의 행동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다. 그것이 존중이니까. 진실 외치는 사람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이다. (외국은 어떤지 모르니 우선 제외하도록 하자)
- 외치지 말라, 안 물어봤으면. 궁금해하면 그때 옆에서 말을 해주든지 말든지. 애초에 진실을 모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무능한 탓이지.
요즘 분위기는 이런 식이다. 그런 게 쿨한 거니까. 세상이 그런 사람을 원한다니 나도 그렇게 살아갔다.
기껏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나를 맞춰뒀더니 교사상은 그 반대였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학생의 보호자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게 아이를 기르고 있는 보호자들을 만날 때마다 수도 없이 고민했다. 말을 할까, 넘어갈까.
오랜 시간 길러져 온 내 사회적 자아는 언제나 말렸다. 싫은 소리 해서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학부모랑 굳이 안 좋은 사이 될 필요 없어. 넘겨.
마음속의 참교사는 반대로 말했다. 몰라서 그러시는 걸 텐데 알려드려야지. 아이가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는 곳이 집이야. 가정이 바뀌어야 애가 바뀔 수 있다고. 얼른 전화 걸어.
아이가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는 곳이 집이라면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교실 밖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 산다는 교사자아는 내 월급만큼이나 작았으므로 나는 보통 침묵을 택했다. 실제로 큰맘 먹고 열 바퀴는 돌려서 말한 조언조차 보호자들은 방어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다짐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학교 선에서 해결하겠다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혜담이를 만나며 고민은 다시 한번 시작됐다.
혜담이는 밝은 아이였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밝게 웃었고 밝게 뛰어다녔다. 긍정적인 모습은 참 좋지만 혜담이가 매일 피를 ‘흘리면서’ 다니는 게 문제였다. 격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혜담이는 늘 상처를 달고 살았는데 집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혜담이의 가느다란 다리에는 닦지 않은 핏자국이나 덧난 상처가 가득했다.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혜담이가 아빠와 단 둘이 사는 것도, 아빠가 공사장에서 일하시고 밤늦게 들어오는 것도 뻔히 아는데(가슴 아픈 배경이 더 있지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생략한다) 그럴 수도 있지. 어느 날 혜담이가 흰 양말을 피로 적신 채 해맑게 웃으며 교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너무 흥건해서 딸기 우유를 발에 엎은 줄 알았다) 그러려고 했다. 이건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문제의 영역이 아니었다.
아이 손만 한 크기의 상처를, 그것도 저렇게 피가 나는데 반창고 하나 안 붙여줬다고? 혜담이는 학기초에도 발이 반 밖에 들어가지 않는 실내화를 질질 끌고 다녀서 내가 한 소리를 했던 전적이 있다. 이건 방임이다. 감지 않아 기름빛 번쩍하는 머릿결에서 나는 냄새, 언제 빨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그놈의 분홍색 반팔티. 혜담이는 아빠가 자기를 자유롭게 놔둬서 좋다고 했다. 자유는 개뿔, 이건 방임이다.
어디까지가 교육이고 어디서부터가 선생질일까. 담임에게 한소리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비단 아이뿐만이 아니기에 언제나 조심스럽다. 부모에게 전화하기 전 스스로에게 수십 번 되묻는다. 지금 내가 하는 연락은 선생질에 오지랖은 아닌 게 확실한가.
나는 결국 혜담이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공사 현장을 다니시던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도 있었고 전화를 한다고 그 집의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체념도 있었다. 혜담이는 그 뒤로도 상처를 그대로 벌려놓은 채 학교에 왔다. 보건 선생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해마다 신경 쓰이는 아이들이 있다.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는 아이.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아이. 방학이 가까워지면 이제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며 우울해하는 아이. 수업 시간에 멍하니 딴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아이.... 어쩜 이렇게 힘든 아이들을 매년 만나는지 가끔은 내가 코난이라도 된 것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 저만 이런 거 아니죠?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직도 나는 전화기를 손에 들고 고민하곤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네가 전화하면 아무도 안 좋아해. 네가 하는 전화가 정말 선생질이며 오지랖이 아니라고 확실할 수 있어?
자신에게 판사질까지 하고 나면 나는 꿋꿋하게 전화기를 쥔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선생질이라는 단어 자체가 바른말, 듣기 싫은 말은 선생님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고나리,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올해도 선생질을 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