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복도에 노란 물이 가득해요.”
“화장실에서부터 있어요.”
아이들이 조잘댄다. 노란 물과 화장실이라. 바로 한 가지 단어가 떠오르지만 우선 외면해본다. 1학년도 아니고 3학년 교실인데 그럴 리가. 계속 모르는 체하고 싶었으나 이미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마다 제보하는 통에 그러기도 힘들었다. 같은 소리를 18번 듣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많은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비록 3학년이지만 괄약근 조절이 미숙한 아이가 복도에서부터 오줌을 흘린 걸까? 그럼 지금 축축한 바지를 입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는 건가? 부디 내 예상이 틀렸기를 바라며 복도로 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추측은 빗나갔다. 노란 물의 정체는 수채화 물감이었다. 투명도나 탁한 정도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었...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허탈한 마음에 우리의 제보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얘들아, 방금 우리가 수채화 그렸잖니. 왜 울상을 지으며 와서는 단어 선택을 그런 식으로 한 거니. ‘복도의 노란 물’ 표현을 시작한 학생은 아무래도 커서 기자나 카피라이터를 하면 소질이 있을 것 같다. 이 와중에도 칭찬거리를 찾아내는 나 칭찬해.
어쨌든 우리 반이 저지른 짓이므로 물티슈를 가져와 복도를 닦았다. 눈치껏 같이 도와주면 참 좋을 텐데 아이들은 몰려와서 구경만 한다. 일부러 모두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투덜댔다.
“아이 참, 이거 흘린 사람 누구야. 선생님 하나하나 닦느라 너무 힘들다.”
아무도 동요하지 않는다. 모두가 나는 범인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화장실에서부터 물을 떨어뜨리며 왔는데도 알아채지 못할 눈치의 소유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이 딴에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물통을 씻고 오라고 했으니 화장실에 열심히 달려갔겠지. 착한 마음이 꼭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몇 살쯤 돼야 할까.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주범이 아니라는 생각이 참으로 오만하다는 사실은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그건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모범시민이 아니었던 자신의 과거를 몇 번이고 되돌려보고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지금 들으면 참 오글거리는 제목이지만 사실 중학생 때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일진들에게(가끔 연예인 준비생인 설정도 있다) 광적인 사랑을 받는 평범한 여학생의 이야기. 이 한 문장으로 이야기의 모든 기승전결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었지만 우리는 유치하다고 비웃으면서도 귀여니의 책들을 열심히 돌려봤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중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책모임을 하게 만들다니 귀여니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반 책모임의 모임장은 H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집에는 귀여니의 책으로 가득찬 책꽂이가 3칸이나 됐다. H는 그 중 몇 권을 학교에 가져왔고 우리는 그의 은혜에 힘입어 독서생활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흔쾌히 책을 빌려주던 H는 갈수록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누군가가 자꾸 책을 구기면서 본다는 것이었다.
과연 우리가 돌려 보았던 책들마다 가운데 부분에 엄지로 누른 듯한 흔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 엄지가 축축했는지 종이가 살짝 일어나기까지 했다. 대체 범인은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분노로 맹세했다. 책을 절대 구기거나 꺾지 않을 것이며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속으로 우리 중에 있을 범인을 엄청 욕했다. 이렇게 개념이 없는 친구가 우리 사이에 있다니. 이런 애들이 영화관에서 발로 의자를 차고 공원 벤치에 쓰레기를 버리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다섯 개의 별’을 돌려보던 주였다. 건네받은 책은 이미 가운데가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둘 중 한 명이다. 있다가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우선 책에 집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읽고 있는 책의 한 쪽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서 누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그래 내가.
범인이 나였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토록 경멸하던 책 구기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니. 다른 때와는 달리 책을 넘기려다 말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다시 읽으려고 천천히 넘기다가 생긴 사달이었다. 나 혼자 ‘다섯 개의 별’을 망가뜨린 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래도 충격적이고 비참한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H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는 못했다. 자존심 때문인지 부끄러움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 뒤로 더 이상 책을 빌려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책을 깨끗하게 볼 자신이 없었다. 덕분에 ‘내 남자친구에게’는 못 봤다.
이기적이거나 배려심 없는 행동은 때로 악의없는 무지에서 비롯될 수 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나는 일들이 많다. 인터넷 기사에 맥락 없는 댓글을 갈기는(‘썼다’는 동사를 그런 글에 사용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들이나 신호를 무시하고 횡당보도를 달려버리는 차 같은 존재 말이다. 그래도 과한 선민의식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나 역시 ‘다섯 개의 별’을 구겨놓은 장본인이니 말이다. 이쯤 되면 문신으로 별 다섯 개를 새겨 놓는 것도 방법이겠다.
언젠가 그들의 마음속에도 다섯 개의 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내본다. 우선 당장 맡고 있는 아이들부터 바꿔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렇잖아도 물티슈를 밟은 채 청소중인 내 뒤로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 보인다는 눈치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언젠가는 너희도 걷다 말고 내가 흘린 노란 물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 친구가 물을 엎질렀을 때 옆에서 돕는 사람까지 되면 더 좋고. 기왕이면 그 깨달음의 시기가 내가 담임일 때 오기를 바라본다. 선생님도 허리는 아픈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