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를 결심하는 사람들의 심리

by 유장래

9살 때 첫 가출을 했다. ‘그럴 거면 나가!’ 이 한 마디에 양말바람으로 뛰쳐나갔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신발은 신고 갔으면 좋았을 걸. 초등학교 2학년다운 패기였다. 꼬맹이가 양말 차림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봤다. 눈치가 보였지만 그 정도로는 날 멈출 수 없었다.

기껏 가출을 해서 간 곳은 어이없게도 도서관이었다. 가본 곳이 많지 않아 떠오르는 장소가 도서관 밖에 없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 마침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자 꼬질꼬질해진 흰 양말을 신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별 수 있나. 다음부터는 준비를 하고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었다.


정작 사춘기 때에는 가출을 못했다. 용돈이 얼마 남았나, 잠을 어디서 잘까를 따지다 보면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를 철이 들었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 떠나고자 하는 의지에 취해 집을 박차고 나오던 그 시절의 뜨거움은 어디로 갔을까. 현실 적인 마음에 걸려 발걸음을 멈추기보다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지고 달리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비슷하게 대학교 자퇴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체육 실기 수업이었다. 초등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직접 수업을 경험해본다는 취지 자체는 훌륭했다. 교수님은 긴 줄넘기 2개를 비스듬히 놓아두고 그 사이에 제기를 뿌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긴 줄넘기 사이는 강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악어가 있어요. 놓인 제기들 보이지요? 악어에게 물리지 않게 줄넘기 사이를 뛰어넘어 보세요.”


긴 줄넘기와 제기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 나이 21살, 이걸 악어라고 생각하고 뛰어넘어야 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온종일 공부만 하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착잡해졌다. 줄넘기 사이를 뛰려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성인이 되어서 훌라후프 안으로 점프하고 있구나.


화장실을 갔다 오느라 운동장을 잠시 벗어나는 상황이 있었다.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동기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 큰 어른들이 줄넘기와 훌라후프를 오가며 땀 흘리고 있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본 그 순간 다짐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고. 이렇게 유치한 일이나 하고 있을 거냐고. 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그날 내렸다.



다짐은 했으나 실천력과 나이는 반비례했다. 현실 담당 영역을 맡고 있는 자아가 계속 내게 물었다. 그래서 자퇴를 하고 나면 뭘 할 건데. 수능을 다시 볼 자신은 있고. 원하는 점수 받을 수는 있겠어? 어떤 질문에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휴학 한 번 하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생의 나는 그 어떤 배짱도 대담함도 없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보겠다던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망들이 있다. 현실적인 여건들 때문에 이 충동들은 턱 끝까지 차올라 일렁이다가도 억지로 가라앉곤 한다. 거창한 상상과는 달리 학교에 성실히 출근중이다. 퇴근을 하고 글을 쓰는 지금만이 그 꿈을 조금이나마 실천해보는 시간이다.


실패했을 때 돌아올 결과는 신경쓰지 않고 달리던 그 시절의 쾌감이 지금도 선명하다. 언제 다시 그때처럼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까. 당장의 삶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현재의 장애물에 겁을 먹은 나머지 미래를 포기하고 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다. 가출 당시 양말을 뚫고 느껴지던 도로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여전히 생생하다. 부디 다시 한 번 양말차림으로 뛰어나갈 용기가 내 안에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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