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혈압이 있다면 재호를 집으로 데려가시길. 금세 고혈압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재호는 어른을 미치게 만들어 버리는 데 특출 난 재능을 가졌다. ‘왜요’ 두 글자만으로 이뤄내는 성과이니 훌륭한 가성비라고 할 수 있다.
“재호야, 잠깐 이리 와 볼래?”
“왜요?”
“너 1인 1역이 청소잖아. 여기 닦아야지.”
“왜요?”
“1교시 수업은 수학입니다. 모두 책 펴볼게요.”
“왜요?”
“뭐가 왜요라는 거야?”
“왜요?”
‘왜요왜요왜요왜요’까지 나오면 사람이 돌아버린다. 그날도 두통이 생기는 걸 느끼며 집에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투덜거리고 있으니 엄마가 대답했다. 너도 어렸을 때 그랬다고. 매정하기도 하지. 유독 딸에게만 박한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엄마가 밉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왜요’를 많이 시전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뿐만 아니라 커서도 그렇다.
∙대학생 시절의 ‘왜요’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 그래, 거기 앞에 학생?”
“교수님, 오늘 십 분 일찍 끝내주신다면서요? 왜 안 끝내주시는 거예요?”
나중에 복학생 오빠가 이 사건을 회상하기를,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궁금했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10분 일찍 끝내준다고 공표를 하셨던 데에는, 1시간 뒤에 마음이 바뀌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건 내 입장이고 내용만 봤을 때 충분히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순수한 호기심이 전해졌는지 (부디 그런 것이기를) 교수님께서는 민망하게 웃으시더니 바로 수업을 끝내주셨다.
졸지에 과 내에서 영웅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얻은 유명세에는 대가가 따랐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의견을 내야 할 때 내가 나서길 넌지시 바라는 눈초리들이 생겨났다. 어처구니없는 부탁도 많았다. 과제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해 달라, 오늘 수업 일찍 끝내 달라고 얘기해 봐라... 사람이 튀면 힘들다는 사실을 그때 호되게 배웠다.
∙고등학생 시절
“왜요? 9시 이후로는 자율 공부 시간이잖아요. 언제 들어가서 공부할지는 제 마음 아닌가요?”
9시 15분에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내게 교감선생님이 들어가서 공부를 하라고 명령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9시 이후는 자율시간인데 왜 참견이지? 내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교감선생님이 내세운 ‘들어가라면 들어가라’는 유교 사상에 기반한 논리는 자유를 중시하는 19세에게 먹힐 리 만무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식의 청춘드라마 속 반항아 같은 주장도 열혈 교육자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서로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친구들은 조용히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켜고 대기했다. 내가 금방이라도 한 대 맞을 것 같았다고 한다.
친구들의 카메라 덕에 내가 무사했던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철이 덜 들었는지 지금도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괘씸죄라는 게 맥락이나 죄질과 상관없이 얼마나 중죄로 취급되는지는 납득했다. 괘씸죄를 저지른 대가로 교감선생님은 다음날 담임선생님을 불렀다. 아마 애들 인성 교육 똑바로 하라고 한소리를 들으셨을 담임선생님은 별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 죄송했다. 그냥 5분 정도 야자실에 들어갔다가 몰래 나왔으면 될 일을 질문 하나로 참 크게 만들었다.
질문은 의문에서 나온다. ‘의문’이 한 개인이 갖는 의구심이라는 심리적 상태인데 반해서, ‘질문’은 그런 심리적 상태가 대화를 통해 소통의 장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행위이며 적극적 행동이다. 또한 의문이 비판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질문은 곧 비판적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권위적 사회일수록 질문은 저항의 상징이 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도전이 된다.
- 학교라는 커다란 질문 (한숭희 교수 칼럼) 일부 발췌-
질문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랐다. 한국 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질문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질문이 인간을 성장시킨다고들 했다. 맞는 말이다. 저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알면 그를 이해할 확률이 높아진다. ‘왜’를 고민하다 보면 통찰력이 깊어진다. 그러나 경험적으로는 ‘왜’를 묻는 일은 참사를 부를 때가 더 많았다.
‘왜’는 도발성을 띌 때가 너무나 많다. 교수님께 대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으며 괘씸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왜요왜요 거리는 재호는... 안 밉다면 거짓말이다. 체험학습으로 한 주 정도 학교에 안 왔으면 좋겠다. 재호에게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관둔다. 이런 ‘왜요’도 별로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왜’는 너무나 어려운 질문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