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에 갇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날 받은 학부모의 전화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겠다. 일방적인 고자질로 이루어지는 경험담 풀기는 속은 잠시 시원하겠지만 결국 찜찜함으로 돌아올 것을 안다. 이거 내 이야기 아니냐며 2차로 이어질 민원 전화의 가능성은 덤이다. 그냥 이렇게만 말해두겠다. 어이가 없는 민원이었다고.
...
취소한다. 미련이 남아서 예시 정도는 들어볼까 한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 방학’이라고 말했더니 애가 집에 가서 ‘선생님이 아기를 다리고 고기도 다려버리겠대’라고 떠벌렸다. 이걸 그대로 믿은 보호자는 언어적 아동학대를 하신 게 맞느냐며 전화를 걸었다(아니, 상식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하냔 말이다).
이야기는 잘 마무리 되었고, 덕분에 나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생겼다. ‘아기다리’는 식으로 생각하면 논란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학급 규칙에 밑도 끝도 없이 불만을 표출하는 아이에게 그럼 다른 반에 가라고 한 적이 있다. 학생 거부 교사라고 할 수 있겠다. 보충수업이 끝나고도 자기들끼리 신나서 집에 갈 생각을 않는 아이들에게 빨리 좀 가라고, 선생님도 쉬고 싶다고 농담하기도 했다(사실 반쯤은 진심이었다). 이건 사명감이 없는 교사, 아이들에게 정서적 상처를 준 교사쯤 되려나.
생각을 하자면 끝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종치면 칼같이 수업을 끝내지 못하는 것도 학생들의 휴식권 침해다. 싸우는 학생을 말리기 위해 큰소리를 내면 정서적 아동학대다.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이게 말이나 되냐고 토로하자 엄마는 심드렁하게 일축했다.
“새삼스럽게.”
그래, 세상은 원래 그랬다. 내가 이제야 자각을 했을 뿐이지. 숨이 막혔지만 그만 분노하기로 했다. 그런다고 바뀔 것도 없는데 뭘. 새삼스럽게 무기력해졌다.
하필이면 같은 날 풋살장에서 6번을 만났다. 그는 매니저가 라인아웃이라고 한 번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두 번 말해도 무시하고 계속 공을 몰고 가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여기에 몸싸움은 어찌나 지저분한지. 공도 없는 사람에게 와서 팔을 툭툭 쳐대는데 들이받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표정을 보건대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욕구를 참는 듯했다. 그와 함께 온 대여섯 명의 일행들을 빼곤 말이다.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들은 많았고, 그래서 소수인 우리는 그저 침묵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갔다가 열만 더 받았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겠나. 화를 내서 좋을 게 없었다. 그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사죄할 것도 아니고 결국 나만 예민하고 욱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최대한 그가 던지고 간 쓰레기를 머릿속에서 내보내려고 애쓰는 일이 억울함의 문제를 떠나 최선의 선택이었다.
화가 나지만 화낸다고 바뀔 일은 없기에 참는다. 함부로 감정을 드러냈다가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참기는 하는데 난 착한 사람은 아니라서 울분이 그득그득 쌓인다. 대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냔 말이다.
이대로 인생을 살다보면 터지는 순간이 오겠다는 결론이 났다. 기껏 참다가 이상한 포인트에 터질 수는 없지. 이대로 무기력에 사로잡힐 수는 없었다. 나름의 치열한 고민 끝에 2가지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잼잼을 시작했다. 도리도리 잼잼할 때 그 잼잼 말이다. 주먹을 쥐고 펴고 하는 일은 오롯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의지대로 손이 펼쳐졌다가 접혔다가 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풀렸다. 성인이 되어서 이러고 있는 게 어이가 없긴 했지만 뭐 어떤가. 기분만 좋아진다면야 엉덩이로 이름쓰기라도 해봐야지.
보다 어른스러운 무기력 극복 방법으로는 청소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는 단순히 청소기를 돌리는 일 말고도 설거지, 책상 정리 등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교육심리학과 석사 출신의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청소는 여러모로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 행위이다.
하나, 즉각적으로 결과가 눈에 보여서 자아효능감에 좋다. 둘,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좋다(뇌의 혈류량 어쩌고 하는 설명을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 생략한다). 제일 중요한 셋,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었는데 먼지가 저 멀리 도망가지는 않을 테니까.
덕분에 아이들이 가고 나면 빗자루를 집어 드는 습관이 최근에 생겼다. 지우개 가루와 종이 조각들을 쓸고 있자면 사악사악 소리와 함께 마음이 안정된다. 깨끗해진 바닥을 보면 쾌감도 있다. 이래서 선배 선생님들이 늘 청소를 열심히 하셨구나 싶다. 애들은 마음처럼 안 되고 교사인 나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교실 바닥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 무기력한 순간이여 어디 한 번 또 와봐라. 쓰레받기를 휘두르며 맞설 테니. 청소가 어려운 상황이면 잼잼을 할 것이다. 잼잼마저 힘든 나이가 오면 숨을 장렬하게 쉬며 배의 오르내림이라도 장악하리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어떻게든 찾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