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볶음밥이 맛있으려면

by 유장래

한숨이 나온다. 먹을 게 없다. 급식표에서 김치볶음밥을 봤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눈앞의 식판을 마주하니 막막할 따름이다. 김치볶음밥은 ‘김치를 볶은 밥’의 줄임말이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 학교 김치볶음밥은 김치볶만밥 정도 된다. 김치를 볶다 말았다. 중간중간 밥이 흰 빛깔 그대로 뭉쳐 있는 게 그 증거다. 와중에 반찬다운 반찬은 싱거운 물김치밖에 없다(보통 핫도그를 반찬으로 분류하지는 않으니까)... 음, 케첩이라도 비벼먹어야겠다.





영양사도 같은 밥을 먹을 텐데, 본인도 먹어보면 맛이 없다는 걸 느낄 텐데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정이 있겠지만 알 도리가 없다. 요리에 미숙한 우리 아빠도 맛있게 하는 게 김치볶음밥이다. 밥이랑 김치만 잘 넣고 볶아도 먹을 만하고 여기에 계란프라이까지 올라가면 극락행 티켓이 되는데 대체 왜! 급식은 단체 음식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는 말길. 대학교 학식 김치볶음밥은 맛있었다.





학식이 급식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영양학을 배우지 못해 어차피 모른다. 아무튼 대학교 학식으로 나오던 김치볶음밥은 참 맛있었다. 비결은 참치에 있었다. 밥알 사이사이에 자잘하게 참치가 끼어있어서 감칠맛과 씹는 맛을 선사해 주었다. 석식에는 날치알이 들어가기도 했다. 김치볶음밥과 행복한 한 끼를 보내며 깨달았다. 음식의 완성도나 질을 위해서는 거창한 무언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로 만든 김치에 5성급 호텔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필요하다기보다 간간하게 씹히는 밑재료가 필요했다.







삶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사소한 생활태도가 인생의 선명도를 결정한다. 아침에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난다든가 샤워를 하며 몸에 물이 떨어지는 감각을 오롯이 즐긴다든가 하는 행동들 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연구결과들이 책과 인터넷에서 많이 떠돌고 있다. 제목은 이런 식이다. ⌜성공하고 싶으면 이불부터 정리하세요⌟. 작은 일부터 소중히 해야 한다는 소리다.




고백하자면 정리정돈에는 아직까지 의욕이 생기지 않고 있다(어차피 다시 펴야 할 이불을 왜 개야 하는가). 그래서 다른 분야의 생활습관부터 건드리고 있다. 혼밥을 할 때 스마트폰 없이 밥 먹기가 그 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식재료의 촉감, 코끝으로 퍼지는 향에 집중하려 한다. 처음 몇 분은 지루해 미치지만 하다 보니 한 끼의 식사가 보다 풍요로워진 것 같기도 하다. 대인관계와 관련해서는 인사할 때 밝은 표정으로 반겨주기를 노력 중이다. 아직은 까먹을 때가 많지만 1년 뒤에는 누군가에게 가벼운 기쁨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들여보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째 떠오르는 학식 김치볶음밥까지는 무리더라도 김치볶만밥으로 살다 가고 싶지는 않다. 날치알은 비싸니까 쉽지 않더라도 참치 정도는 소량이나마 들어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밥과 김치를 구석구석 성실하게 볶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맛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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