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도 아니고 된장국 알레르기는 또 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민상이의 표정과 목소리만 보면 진짜 같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전 세계에 딱 열세 명만 가지고 있는 희귀병 중에 된장국 알레르기가 있는 듯하다. 아홉 살임에도 급식을 먹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수준급 거짓말을 펼치는 이 아이, 싹수가 노란 걸까 파란 걸까. 포커 선수나 연기자를 하면 성공하겠으나 초등학교에서 필요한 덕목은 아니었다.
민상이는 거짓말이 삶에 배어있는 아이였다. 숙제를 물으면 했는데 집에 놓고 왔다고 하고 두통이나 복통은 꼭 수학과 받아쓰기를 하는 시간에 생겼다. 민상이의 거짓말은 전형적인 유형에서 그치지 않았다. 받지도 않은 결석계를 집에 가져갔다고 해서 보호자와 오해가 생긴 적이 있다. 설명을 이해한 척해놓고는 엉뚱한 심부름을 해왔다.
프로파일러들을 향한 존경심이 커져가던 어느 날, 호박전 사건이 터졌다. 호박전을 먹고 오랬더니 이 자식이 호박전을 휴지로 감싸서 버리고 오는 게 아닌가. 먹고 왔다며 뿌듯한 얼굴을 하는 행태를 보니 평소에도 나를 자주 속여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교사를 호구로 보는 녀석을 놔둘 수 없었다.
이 거짓말쟁이 새끼야, 속으로만 한 번 불러보고 점잖게 훈계했다. 물론 호박전은 보는 앞에서 다시 입에 넣게 했다. 민상이는 계속 다 먹은 척을 했다. 기회만 나면 뱉을 속셈이 뻔했다. 선생님 다 먹었어요, 입 벌려봐, 혓바닥 아래 그대로 있는데 무슨 소리야,... 호박전 하나 가지고 소중한 밥 먹는 시간을 날리고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단순한 급식지도 문제가 아니었다. 규칙을 어긴 범법자 녀석은 응징을 받아 마땅했다.
결국 민상이는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는 틈에 기어이 호박전을 뱉고 왔다. 혼이 나기야 했지만 어쨌든 호박전을 먹지 않는 데에 성공했으므로 민상이는 기뻐 보였다. 얘를 어쩌면 좋을까. 민상이는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이용해 본인의 목적을 이루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결과 민상이는 작았고, 수학 문제를 못 풀었으며, 친구와 자주 다퉜다.
퇴근 후에는 직업과 관련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민상이를 싫어하게 되겠다는 생각에 교육 자료를 뒤적였다. 대체 이 거짓말 덩어리를 어떻게 고쳐놓는단 말인가. 인터넷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하는 맹랑이들에 대한 걱정과 분노 섞인 사연들이 가득했다. 아이의 꼼수에 놀아나는 무기력한 어른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이 됐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주원인은 회피라고 한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가정통신문을 받았다고 하고 호박전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본다. 혼나지 않으려고 우선 숙제를 했다고 해버린다. 민상이는 극단적 회피형 인간일 뿐 나를 농락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더더욱 호박전을 먹이고 싶어졌다. 세상에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피해버린다면 너에게 무슨 발전이 있을까.
이야기를 하자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애가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겠냐고, 어른 입장에서는 호박전이 별 것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죽기만큼 싫은 일일 수 있다고 했다. 엄마, 걔는 뭐 그렇게 힘든 일이 많아. 이런 식으로 공부도 안 하고 말 바꿔서 친구랑도 싸우는데 이걸 그냥 놔두라고? 하기 싫은 일도 마주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엄마는 체념하듯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그래서. 뭐라고 하니까 애가 바뀌었니. 호박전을 먹었니.
... 안 먹었지.
급식으로 호박전이 나오는 날이면 잔반통에는 아이들이 버린 호박전이 탑을 이룬다. 이렇게나 싫어하는 호박전을 강제로 먹게 하는 게 옳은 판단일까. 억지로 호박전을 씹다 보면 삶의 문제들을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게 맞을까. 인생을 끝까지 살아본 게 아닌지라 아리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