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가디건의 울림

by 오로라


작년, 우리 동네에 작은 문제가 생겨 주민들이 한데 모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었던 사람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옷차림이 너무 허름했다. 나는 그저 ‘개취’라며 상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인데, 너무 초라하다”고 말하자,

나 역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나도 “제발 좀 잘 입고 다니세요.”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엔 가디건을 걸치고 왔는데, 소매 끝은 심하게 헤어져 있었고, 좀이 슨 듯 구멍도 여기저기 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돈도 많다는 그의 행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달 뒤, 유명한 현대미술가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의 예술 철학은 깊었고, 말에는 삶을 통찰하는 힘이 느껴졌다.

내가 십대라면 그에게 팬클럽이 있다면 열혈멤버로 활동하고 싶을 정도였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나는 문득 그의 가디건에 난 구멍을 보게 됐다.

조금 놀라 그의 옷차림을 다시 찬찬히 살폈다.

양말과 신발까지 색감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미술가다운 차림이었다.

그런데 바지도, 신발도, 상의도 모두 꽤 시간이 지나 낡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검소함에 감탄했고,

그것이 오히려 그의 몰두와 태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같은 ‘낡은 옷’인데, 왜 동네 회장의 가디건은 불만이었고, 이 작가의 가디건은 인상적이었을까?'


얼마 뒤 다시 회장을 만났을 때, 나는 사람들 앞에서 쿨하게 사과했다.

“자네 옷차림 얘기한 거, 미안해.”

그리고 그 예술가의 옷차림에 대해서 내가 느꼈던 감상도 이야기 했다.

사실 ‘구멍 난 가디건’ 하나로 단순히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사과를 꼭 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를 멋진 예술가와 나란히 놓고, 모두의 눈총을 받는 그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그의 스타일과 삶의 내공은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도 그런 멋진 사람을 닮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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