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가 산통을 깬 거야?

by 오로라


기차 소리가 멀리서 흐르는 봄날 오후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강가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지인이 알려준 '안갯길 공원'을 검색하고 찾아왔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물의 정원'이었다.

물의 정원은 몇 번 와 본 곳이었다.

엄마와 함께 왔다가 주차가 쉽지 않아서 결국 그냥 돌아간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주차할 공간이 있었다.


공기엔 꽃가루 냄새가 살짝 섞여 있었고, 바람은 적당히 부드러웠다.

아, 참 좋다.


멀리 평원 쪽에선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보니 두 남자가 우리 시절의 추억을 돋우는 옛 가요를 부르고 있었다.

가끔 삑사리도 난다. 하하

하지만 이 기분, 나른하고 낭만적이기에 충분했다.

병환으로 많이 노쇠해지신 엄마는 10미터 쯤 걷다 의자를 찾아 쉬시곤 하셨다.

벚꽃도 즐기며 천천히 거닐던 우리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나무 그네 하나를 발견했다.

다가가 보니 이미 한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곳에 앉고 싶어 하셨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나는 여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여성은 살짝 망설이다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하며 눈길을 피했다.

벌써 힘이 다 빠지신 어머니가 그래도 그네 쪽으로 다가가자, 마지못해 자리를 내주었다.
“일행이 오시면 비워드릴께요.”

등받이가 있는 그네에 앉으신 내 어머니는 한시름 놓으신 듯 아주 편안해 하셨다.
나는 어머니 곁에 서서 강가를 등진 채, 봄바람과 어머니의 고른 숨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평화로움이 너무나 멋졌다. 내 마음은 점점 더 우아해지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왠지 드론 같았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이지는 않았다.

문득 멀리서 덥수룩한 한 청년이 다급히 손을 흔들며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나는 나에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드론 소리로 아까의 평화롭고 은은한 감동은 파괴되고 있었다.

다시 문득 그를 쳐다봤을 때 여전히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에게 그러는 것임을 확인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 죄송한데요… 제가 여자 친구에게 프로포즈하려고 하려는 중인데...”
순식간에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는 마술이라도 부려서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아, 엄마도 챙겨서!

벌써 마음은 타 들어갔지만 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엄마에게 이제 일어나자고 말을 했다.

아흔이 다 되시는 노모는 아무것도 모르신 채 더욱 천천히 일어나시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 젊은 여성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 청년을 발견했다.


“오빠, 드론 띄웠어?”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청년은 그녀에게 황급히 다가오며 “으응, 아니”라고 말하였다.
어디선가 드론 소리는 계속 들렸고 여자 친구를 다시 안심시키기 위해 다가 온 청년은
그네에 함께 앉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10미터쯤 떨어졌을 때 한쪽 하늘, 같은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아주 작은 드론을 발견하였다. 선물꾸러미 같은 더욱 작은 상자가 드론에 매달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다시 그들을 봤을 때 드론 소리는 멎어 있었고, 그들은 한참을 포옹하고 있었다.

그리고 목걸이였나 보다. 청년의 손이 그녀의 목 주변에서 이리 저리 움직인다.


“저 사람들 아직 안 갔어? 나는 등받이가 있는 그 자리가 좋아,”
아무것도 모르시는 내 어머니는 그 그네로 다시 가고 싶어 하셨다.

“엄마, 저 청년이 저 여인에게 프로포즈하려는데 우리가 산통을 깼나봐”
“응, 뭐라구?”

"응, 아니야~ 하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내가 끼어 있었다니...

그래, 인생은 결코 드라마가 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우리들의 순발력이 더 빛나고 더 잊지못할 추억이 되지 않는가.

저들의 추억에도 어쩜 엄마와 나는 결코 예상하지 못한 엑스트라로 평생 안줏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추억의 주머니 속으로도 영화 같지도, 일상 같지도 않은 저 장면이 저장되겠지?


아련한 기차 소리가 다시 들리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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