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수를 했다.
재수 시절 내내 나만 우주의 궤도에서 이탈된 것만 같은 소외된 기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깔깔 웃고 있었다. 내가 이토록 불행한데, 세상은 단 한순간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대학 입시를 다시 준비했다.
나는 거의 묵언수행을 하는 사람처럼 말을 안 하고 지냈다.
다행히 장학금도 받으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고등학교 시절 내 짝꿍 A를 만나는 일이었다. 좀 어스름한 카페에서 만난 A는 내가 아는 조용하고 숫기가 없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시국이 좋지 않아서 대학생들이 이념 공부를 하고 데모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말투는 다부지고 눈빛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친구 A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담배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심장이 멎을 것만큼 깜짝 놀랐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엉엉 울었다.
1년 동안 단절된 사이, 친구는 어느새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로 멀어져 있었다.
특히, 담배를 피우다니! 당시의 경직된 사회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가는 모습이었다.
경직된 사회를 따라 친구를 말려야 하나, 사회 편견과 싸우는 친구를 응원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리고 친구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 이후, 나는 어디에서든 담배 피우는 여자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정작 담배 한 모금도 피우지 않는 내가 그렇게 말하니, 사람들은 종종 당황해했다.
나는 간절히 우주에 외쳤다.
“담배는 그냥 기호식품일 뿐이라고!”
그 후, 나와 함께 재수를 하고 B대 미대에 입학한 C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참 예쁘게 생겼는데 대학 들어간 이후 화장도 그렇고 지나치게 옷차림을 화려하게 하고 다녔다. 풋풋한 대학생 같기보다 성숙하고 농염한 아가씨처럼 보였다.
사실 우리 시절, 대학생 1학년 때는 어른처럼 보이려고 화장이나 옷차림이 나이에 맞지 않기도 했다. 미스코리아처럼 하고 다닌 후배도 있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면 자신의 본래 모습이 나온다. 드디어 대학생다운. 하하.
그 친구와 클럽 같은 곳을 갔는데 이 친구도 담배를 꺼내서 피우는 거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 담배 피우는 모습, 어때?"
그 질문은 ’나 멋져 보여?‘처럼 들렸다.
‘’아 뭐야? 너도?‘
‘담배는 기호 식품일 뿐이라규!!!’
과 선배지만 나이가 같다고 말을 놓으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와 금방 친해졌고 여기저기를 함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나를 어느 으슥한 카페로 데려갔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나도 피우라고 했다.
그것은 무슨 의식처럼 느껴졌고 그것을 안 하면 그 친구를 거절하는 셈이 되는 것만 같았다.
대체 왜 이렇게 다들 담배에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지. 그런데 대체 세상의 편견에 대항하는 게 이 방법밖에 없는 걸까?
(이들은 모두 아주 오래전부터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졸업 후 나는 직장생활을 했는데 잘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울고불고 사표를 냈다.
도망치듯 대학원에 갔다. 대학원에서 상처받은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은 대학생활과 달랐다. 나 또한 달라져 있었다. 누구와도 별 말을 나누지 않았다. 대학원 생활은 오롯이 나의 내면과 대화를 하는 시간도 많이 주어졌다. 그런데, 드디어 내 논문 주제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온 거다.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도무지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아득하기만 했고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작업실을 나와 복도 어딘가에 걸터앉았던 것 같다.
그때 다른 전공의 동기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그 친구는 그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았다. 그리곤 다시 내뿜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침이 꿀꺽 넘어갔다.
왠지 그 모습은 너무 멋있었고 나도 그처럼 한 대 멋지게 빨아 내뿜고 나면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홀린 듯한 내 표정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지 갸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나에게 권했다.
“한대 피워 볼래?”
나는 정신을 차린 듯 깜짝 놀라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갑자기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감동을 받아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아니 몇 달이 지났을까. 과동문의 결혼식이었는지 과의 모임이었는지 많은 동문이 모인 곳에 갔을 때이다.
그 친구가 보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날 진심으로 우정을 느꼈고 그래서 그냥 그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그를 안았다.
그 친구가 깜짝 놀란 것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나는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뒤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이제는 그 어떤 말도 나를 흔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