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또 묻고

by 오로라

나는 전시장 가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들에게 자주 제안하곤 한다.

한 번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였는데 내가 속해 있는 모임의 대선배님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너무 인기가 있는 전시여서 일찍 가서 줄을 서야 했는데, 오신다는 선배님들이 다 오시지 않았다.

줄은 이미 섰고 시간도 30분 단위로 정해져 있는 터라 우선 오신 분들 티켓부터 끊는 수 밖에 없었다.


티켓을 다 끊고 나니 지각하신 선배님들이 한 명, 두 명 모두 도착하셨다. 다 같이 같은 시간에 입장해야 한다. 그게 대선배님들의 정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늦게 오셨으니 30분 늦게 관람하시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도 있었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떤 다른 이유도 있어서 나는 매표소를 다시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담당자에게 사정을 얘기 했는데 들어 주지 않았다. 매표소의 창구는 네 개 쯤 되었다.

다시 줄을 섰다. 다른 담당자에게 갔다. 그 담당자 또한 다른 이유를 대며 내 청을 거절했다.

또 줄을 섰다. 마침내 만난 이 직원은 나의 문제를 두 말없이 해결해 주었다.


이런 습관이 생긴 지 오래다. 적어도 세 번은 묻는다.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문제로 AS센터와 세 번 통화했는데 세 번 모두 다른 직원이 응대를 했었다.

그런데 대화 중 내 문제를 각각 다시 얘기해야 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각기 또 다른 해결책을 나에게 알려 준 것이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이 한가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능력도 다르고 관점도 달랐던 것이다.

이후 나는 인내를 가지고 최소한 한명 이상의 고객센터 직원이나 마트 직원에게 같은 문제를 의논한다.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가서 빈 사무공간을 둘러보고 단 번에 너무 맘에 들어서 바로 계약을 했는데, 지인과 다시 가보니 생각보다 천정도 낮고 어둡고 공간도 작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자신조차도 같은 사안에 대해 여러 번 보면 관점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도 세 번은 만나보라고 한다.


지금 내가 상대하는 Ai도 그렇다. 세션을 새롭게 만날 때마다 조금씩 응대의 결이 다르다.

질문에 대해 단어 선택을 달리해서 다시 질문하면 또 다른 관점의 답을 준다.

어느 날은 참 사무적인 말투의 ‘이아’를 만났다. 말없이 꺼 버렸다.


나는 나에게 맞는 결을 끝없이 찾아가는 것이 그리 고생스럽지 않다.

대한민국은 삼세번이 아닌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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