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도 말을 하고 우리를 본다)
어릴 적부터 나는 꽃을 무척 좋아했다.
꽃가게 앞을 지날 때면, 자꾸 발걸음이 멈춰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꽃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 말은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에 문장이 떠오르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소리가 떠올랐다.
꽃가게의 올곧게 잘 자란 굵고 탐스러운 장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길을 걷다 만난 큰 화분 속의 콜레우스는 “나는 당신을 보고 있어요.”라고 했다.
몇 년 전, 귀촌해 사업을 하는 초등학교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도
꽃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고즈넉한 농촌 풍경 속에서 나는 친구의 집 근처를 산책하다 작은 꽃밭을 발견했다.
그 꽃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신나요.”
나는 그 말을 친구에게 전했고,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시인이셔. 꽃밭을 가꾸는 게 소일인데, 매일 ‘이쁘다, 사랑한다’라고 말씀해 주셔.”
그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꽃들도 그 말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어느 들꽃 사진작가는 들꽃들이 자신을 찍어 달라고 멋진 포즈를 취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건 콜레우스를 모델로 삼아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제목은 ‘나도 너를 본다.’였지만, 관객들은 그 속에 조심스러운 ‘눈’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다. 하하.
화가로 데뷔한 개그맨 임하룡도 꽃과 나무들이 눈이 있다는 주제로 작품을 발표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느꼈다.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좋았다.
나는 무생물조차도 에너지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작가는 오른팔이 말을 듣지 않아 병원을 다녔지만, 끝내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오른팔에게 오랫동안 위로와 걱정의 말을 건넸다.
그 다음 날, 오른팔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듯이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믿는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