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있나요
밥이 보약이라면 밥친구는 보석
주말 저녁 혼자였다.
아들이 성인이 된 이후 학업과 군 입대로 혼자 밥먹는 날이 익숙할만도 한데 아주 가끔은 맛이 없다. 올 여름 긴 폭염때문인지 친정부모님 때문인지 더 입맛을 찾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개월, 엄마는 3년째.
가장 가까운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새삼 더 와 닿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라디오에서 암으로 아내를 떠나 보낸 남자가 두 아이를 혼재 키운 이야기를 전하며 울먹이는 사연이 나왔다. 안타깝게 자신도 암이었는데 아내도 암이고 아버지도 암이었다. 아내와 아버지가 순서대로 곁을 떠났다며 그리움이 가득찬 목소리 때문에 듣는 나도 울컥했다.
그 순간 휴대전화기 벨이 울렸다.
"언니! 어디예요?"
알고 지내는 S였다.
"집이지."
다음 주 중에 만나기로 했다가 시간 조율이 안 되어 미룬 상태였는데 신경이 쓰였는지 전화를 걸어왔다.
"왜?"
"주말에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편하게 만나요."
"괜찮아. 다음에 봐."하필이면 내가 되는 시간에 S는 당직이었다. 다른 날보다 늦게 끝나서 평일엔 어려운 모양이라 미루어도 된다고 했는데 약속을 다시 하려고 전화한 모양이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S가
"밥 잘 챙겨 먹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낮에도 아는 E와 통화를 했다. 그녀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밥 잘 챙겨 먹어요. 먹기 싫어도 힘이 되니까. 뭐라도 시켜 먹어요."
요즘 여러 가지 신경 쓰는 일도 있고, 부모님 생각에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E도 최근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냈고, 두 딸은 모두 독립했다. 한 명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작은 아이는 직장 근처에서 생활한다. 남편과 같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녀 역시 낮엔 혼자다.
"아이고, 안 되겠네. 영양가 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아예 정합시다."
그렇게 다음 주 평일 점심식사 약속을 했다.
친정엄마가 살아 계실 때 바쁘게 일하는 나에게 가끔씩 전화를 하시곤 했다. 첫 마디는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밥 먹었니?"
안부 인사다. 나중에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된 이후에 나도 똑같이 전화를 걸면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 약 드시려면 밥은 꼭 드셔요."
밥맛이 없다는 엄마한테 당부한 말이었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요양원에서 전화를 걸어올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밥!'
살기 위해선 중요하다. 하지만 내겐 밥 보다 밥친구다 더 필요하다. 따뜻한 밥친구!
언제 부터인가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상담자로 일할 때 청소년기 학생 중 급식 시간에 혼자 밥먹기 싫어서 아예 식사를 안하거나 등교하기 싫어했던 마음을 알 것 같다.
아직은 혼자여도 괜찮고 종종 외로울 뿐이다. 하지만 더 나이 들어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 혼자 밥먹는 날이 많아진다면 지금보단 훨씬 외로울 것 같다.
인간에겐 존재론적 외로움이 있다. 누군 그것을 고독이라고 말한다.
고독이 꼭 병은 아니다. 하지만 고독을 너무 자주 느끼면 인간은 병이 난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강한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사이라면 밥을 함께 먹어도 외롭다. 그래서 군중 속의 외로움이란 말도 있나 보다. 외로움이란 주관적이라 개인차가 있다.
오늘날 혼자여도 휴대전화기 각종 정보로 시간을 보내기 좋다. 다양한 매체를 넘기면서 듣고 보다 보면 시간은 잘 가는데 문득 공허함을 느낀다.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올리는 영상 속엔 대면에서 느끼는 온정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 화려한 도시가 주는 편안함 속에 외로움 같다.
서로 마음나눌 수 있는 친구와 밥을 먹는 기쁨을 대신할게 또 있을까? 밥을 먹는 일은 생존하고 연관된 일이기도 하지만 식욕 자체가 욕구로 즐거움이다. 통하는 대화 역시 친밀감으로 강한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를 채워준다.
가족이라도 좋은 밥친구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 먹는 밥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맛이 없다. 가끔은 소화 불량처럼 불편하다.
외로울 때 마음도 달래고 밥맛도 느끼게 할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 가끔은 혼자 외로워도 밥은 먹어야 한다. 그래야 또 힘이 나서 친구랑 마음을 나눌 힘이 생기니까.
다음 주 E와 함께 할 점심식사와 S가 찾아 올 토요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