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선물
교통사고 이후 달라진 친구의 다짐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친구 E를 아주 오랫만에 만났다.
10여 년은 못 본 것 같다.
"너무 보고 싶었어."
반색하며 한 친구의 말이었다.
그동안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근황이 궁금했다며 혹시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물어 당황했다. 그런 건 아닌데.
"아니야. 그동안 내 삶이 힘들어서 그랬어."
돈 버는 일과 가족들 챙기는 것 이외에 여가를 충분히 가질 겨를이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나
친구와 나는 세월의 공백이 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처럼 금세 가까워져 서로의 이야기를 거짓없이 나눴다.
"작년에 죽을 뻔 했잖아."
놀란 표정을 짓자 친구는 교통사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보행 중 갑자기 달려오는 트럭에 치여 두 달 반 동안 입원했다며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실업 상태라고 했다.
"2주 정도면 다시 출근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래서 잘린 거지."
"엄청 고생했겠네."
"아직도 움직이면 꼬리표가 아파서 뭘 못해."
가해 운전자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 영화처럼 몸이 붕 떠서 바닥으로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어머나~!"
듣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2년 전 가을 나도 중앙선을 넘어 온 승용차와 정면 추돌한 적이 있었다. 그 사고로 차 수리만 3주 정도 걸렸고, 비용도 약 8백만원 정도였다.
'사고가 크게 난 것에 비해 운전자 모두 많이 다치지 않은 것이 기적이네요.'
당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기적같은 삶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
후유증인지 종종 어깨가 아프다. 파스를 붙이기도 하지만 임시방편이다.
친구 역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사고 직후 짧은 시간에 든 생각이 있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추돌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핸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 탓에 오늘까지 기적처럼 살아 있다. 운전대에 고개를 파묻고 누군가 차 문을 두드릴 때까지 온 몸을 부르르떨며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친구도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찰나에
'나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다며 사고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의식을 찾고 입원하고 치료받으면서 느낀 여러 가지 생각을 이야기했다.
"돈 많은 것도 필요없고, 많이 배운 것도 다 필요없더라. 나이 들수록 건강이 최고야."
사고 이후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친구는 죽음에 대해 더 깊어진 듯 보였다.
활동적인 성격인 친구는 사고로 지속해 오던 수영을 중단했다. 새로 시작한 춤도 그만두었다. 일상이 어그러졌다.
사고 이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더 깊은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나에게도 앞으로 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했다.
"너 생각도 나더라. 꼭 만나고 싶었어."
짧은 순간 미안했다.
"열심히 산다고 꼭 잘 사는 건 아니더라. 내 삶이 그랬어. 나도 너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야."
둘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친구는 장학금을 받지 않았다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려웠던 그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 그렇지. 우리도 얼마나 가난했는데."
친구는 내 짐작 보다 훨씬 어려웠던 것 같다.
"너가 잘 살았네."
엄마가 시켜 준 배달로 온 병우유를 먹고 컸다고 하자 친구가 한 말이었다. 내가 헛웃음을 지웠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라면 하나 끓여놓고 다섯 명이 달려 들어 서로 먹겠다고 싸웠다."
형제가 다섯 명이었나보다. 당시 자기 포크로 더 먹겠다고 하는 과정에서 손가락 한 곳을 찔러 지금도 상처가 있다고 했다. 아직도 아프다고 말하는 친구가 다르게 보였다. 친구의 상황을 잘 몰랐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에게 잊고 있었던 시간만큼 미안해졌다.
"전혀 몰랐어."
당당해 보였던 친구의 모습에서 그런 그림자를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 대부분 가난했다고 하지만 친구는 훨씬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보호받은 부분이 많았던 것에 감사했다. 부모 울타리의 중요성을 다시 느꼈다.
친구의 남동생은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당시엔 천막 가게였던 것 같다. 자기가 경험한 일화를 거리낌 없이 전하는 친구의 얼굴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누가 더 가난했는지 내기라도 하듯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내게 연락이 되지 않자 내 카카오 프로필을 가끔 봤다고 다. 혼자 내 모습을 떠올려 보곤 했다고.
작년에 내 이름으로 검색한 에세이책을 구매하혀 치매 환자였던 친정엄마의 이야기로 내 상황을 짐작했다고.
"너한테 뭔가 일이 있었구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
E도 나처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8년 지방근무 발령이 나 세 아이를 혼자 돌봤다.
"그랬구나!"
아들과 동갑인 쌍둥이 딸이 있었고 3년 아래 동생까지 셋을 일하면서 봤다니 힘들었을 것 같다.
"나도 편하진 않았지."
친구는 쌍둥이 딸 이야기로 말을 이어갔다.
"큰 애는 지금 스페인에 있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느라고 그러고 있지."
친구는 너무 바뻐서 애들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썼더니 오히려 세 아이가 스스로 진로를 알아서 찾아가더라고.
올 해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신입생이 된 아들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100살까지 살건데 학교 두 번 가면 어때. 자기가 좋으면 돼."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작년에 다시 공부한다기에 아들한테 딱 하나만 물어봤지. 엄마가 반대해도 할 거지라고 했더니 바로 '네'라고 하더라. 그래서 더는 안 물었어."
E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또 한 번 웃고 막내 딸 이야기까지 전했다.
친구도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낸 것을 알 수 있었다.
교통사고 이후 E는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라고 했다.
"웰다잉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
죽음 직전까지 다녀왔다더니 친구가 새로운 주제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나도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지."
둘은 죽음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E는 15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이야기를 꺼냈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 하던 시어머니의 상황까지 전했다.
"보통이 아니었지."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이었던 교사 K가 미국에서 얼마 전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전했다.
"암이었다구?"
아마 60대 중후반 정도 되었을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 왜 갔는지는 친구도 몰랐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만 들었다고만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다가 올 지 모른다. 저마다 다른 사인을 남기고.
E는 내가 알만한 몇 몇 사람의 근황을 더 전했다.
"너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면서 살아."
고개만 끄덕였다.
몇 년 전 면역 질환으로 힘들었을 때를 이야기 하자 나를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어. 따로 약은 없고 면역력이 좋아지면 된다는데 쉽지 않네."
친구도 아파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중년은 대부분 만나면 질병 자랑이다. 자랑할 주제는 아님에도 우리 둘은 고통까지 공유했다.
돌아오는 길,
E로부터 이해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잠들기 전,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옛 친구는 마음이 편하구나.'
건강하게 지내다 또 보자고 덧붙였더니 E 역시 바로 답을 보내왔다. 오랫만에 나를 봐서 너무 좋았다고.
다음 날 가족끼리 강원도로 휴가를 떠난다는 말이 생각나 잘 다녀오라고 남겼더니 하트 3개까지 달아 즉시 회신했다.
'그래.'
짧게 마무리 인사를 보낸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친구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순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이 순간에도 누군가 세상을 떠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생의 마지막 시간인 줄 안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순간을 몰라 시간을 아깝게 보내기도 한다.
죽음의 위기에서 깨어난 친구로부터 들은 여러 이야기는 이해의 선물 같았다. 긴 시간 떨어져 있었으나 서로를 이해하자 이야기기 깊었다.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부활처럼 다시 살아 있는 기적에 감사해서 자꾸 친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