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고민거리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by 오로라

가장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난다는 7월 말, 8월 초다.

딱히 여름휴가를 떠날 이유나 어린 자녀도 없어 지인 2명과 얼굴이나 보자고 약속했다.


벌써 20년이 넘은 사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연이다.


K는 국문학과를 나와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편집 프리랜서다.

S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소설이나 수필 같은 도서에 삽화를 그리거나 어린이 관련 도서에 그림을 그렸다.

세 사람 다 책을 좋아하고 관련된 일을 하기에 만남이 계속 이어진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적어도 두어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났다.


세월이 흘러 이제 모두 중년이 되었다. 종종 몸이 아프거나 가족 애경사가 있는 사람으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을 때만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서로 메시지라도 안부를 물으며 지내왔다.


불볕더위로 지하철 근처 쇼핑몰에서 만났다. 여의도 IFC몰을 선택했다. 세 사람이 사는 곳의 중간 지점이었다.




평일 12시 30분.

직장인 말고도 사람들로 가는 곳마다 붐빈다.

여러 국적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자주 보였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식사나 차를 마시기 위해 줄지어 있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았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노인들도 곳곳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셋은 가족 못지않게 서로 편안한 사이로 느끼는 관계로 발전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편해졌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S의 딸)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어머, 벌써 그러네요.”

"내년에 기념으로 여행 가요."


만남이 오래되면서 책 이야기 말고도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우리 모두 마처세대였다. 부모님 이야기를 최근 더 자주 한다.


K는 셋 중에서 친정 부모님 두 분과 가장 먼저 이별했다. 나도 올해 5월에 친정아버지까지 돌아가셔서 비슷한 상황이다. S는 어릴 때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고 엄마는 강원도에서 혼자 산다. 작년에 관절 질환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한동안 주말마다 다녀오곤 했다. 근처에 친정언니가 한 명 살고 있어 더 자주 찾아 뵙는다고 한다.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면 세월에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올해도 이미 절반을 넘어 이제 8월이 시작된다.

누군가 인생의 속도를 나이에 비유하더니 지금 우리의 속도는 시속 50㎞.

앞으로 더 빨라지겠지.

시속 60, 70, 80….

그렇게 100의 속도로 쏜살같이 달려갈 것이다.


기대 수명이 80세를 넘은 지 한참 지났고 이제 곧 90세까지 바라보겠지.

100세를 넘기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이전엔 축복이었다. 만 60세만 되어도 환갑잔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더는 장수가 축복이 아닌지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작년에 우리나라도 초고령화가 되었다. 나도 앞으로 30년 이상은 더 살아야 한다.

나이 들면서 점점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디서 누구랑 무엇을 하며 살까?'


K는 미혼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소개했고, 이후에도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으니 비혼은 아니다. 단지 결혼하고 싶은 대상자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을뿐.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독립해서 혼자 살았다. 어머니 건강이 악화하면서 여동생과 함께 모시기로 한 때문에 합가를 선택했다. 예상보다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다. 하지만 여동생 가족과 지금도 같이 살고 있다. 다행히 제부와 조카들 모두 K와 잘 지내는 모양이다. 지금 봐선 계속 그렇게 지낼 것 같다.


S는 대학교 캠퍼스 연인(CC)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사이가 좋다. 변수가 없다면 노후까지 부부 중심으로 함께 살 것으로 보인다.


나는 잘 모르겠다.

코로나 시절 생활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잠시 팬데믹 상황을 피하고 재충전할 겸 강원도행을 선택했다. 그것이 이후 결혼생활의 변수가 되었다. 수도권에 있는 집을 팔고 떠났는데 그사이 집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전세를 주고 가자는 내 의견에 남편이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빚을 내서 주택을 구입하는 일은 더는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중년기 이후 가계대출은 경제적 부담보다 심리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남편이 있는 강원도에서 살면 되겠지만 나는 도시가 편하다.


내 성격은 관계 지향적이고 외향적이라 친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노년까지 익숙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때문에 도시 환경에 익숙하다. 친구들과 지인 대부분도 서울과 수도권에서 산다.




서울 한복판의 북적거림이 때로는 불편하지만 익숙한 도시를 떠나 사는 것은 더 불편하다. 나에게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지내는 게 안 맞는 것이란 사실을 코로나 시절에 충분히 경험했다.


지금 내 소유의 집은 없다. 하지만 활력 넘쳐 보이는 도시에서 아버지가 남겨 주신 전세 집에서 잠시 지내고 있다. 2년 후면 어디로 갈지 정해야 한다. 그동안은 익숙한 도시에서 살아야지.

가끔 서울의 대학가와 중심인 명동, 강남, 여의도와 같은 지역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이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수도권과 외곽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다. 결혼 전까지 친한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서 살았지만 이후 반 이상은 경기도로 이사했다.




'나이가 더 들면 나는 어디서 살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 생각엔 서울이 아니어도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집은 구축이라도 괜찮으니 소형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싶다. 그동안 살아 본 지역들을 고려해 볼 때 경기도 성남시 분당이나 용인시 수지 정도면 괜찮을 텐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곳은 신분당선을 타면 서울 강남까지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는 장점이 있다. 중대형 병원, 약국, 도서관, 복지관, 식당, 쇼핑몰, 공원 등이 있고, 주거지로 안정화되었다. 여러 평형의 아파트 단지들이 많아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서울처럼 복잡하지 않아 웬만한 곳은 자가용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주거니 근처에 산이나 녹지도 적절하다.




폭염이 계속되어 지난 주말 오전엔 서둘러 도서관으로 피서를 다녀왔다. 이미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자리가 별로 없었다. 중고등학생 말고도 중장년의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도서 검색 후 원하는 책을 읽으며 오후까지 시간을 보냈다.


나이를 더 먹어도 이렇게 독서 공간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 도서관 옆에 작은 공원이 있다. 아파트와 연결된 탄천도 있고 상가도 많다. 다양한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식당과 카페도 쉽게 이용이 가능하다. 이미 형성된 학원가와 지하철역이 근처에 있어서다.


체력이 더 젊을 때와 같지 않다. 늙어가면서 더 하겠지.

갈수록 에너지 소진이 많은 일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도 이전보다 어려울 수 있다. 아무리 사교적이라도 해도.




노년기엔 새로운 환경으로의 이사는 큰 결심이 따른다.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가는 문제는 충분히 고려해 봐야 한다. 특히, 해보지 않았던 전원생활이나 귀어, 귀촌 보단 집을 축소하는 편이 낫다. 지역도 살던 곳 근처에서 찾는 게 더 바람직하다. 만약, 자식 옆으로 이사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몸이 몹시 아프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낫을 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산다고 꼭 자식이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니까.


이 경우, 차라리 익숙한 동네 친구가 있는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환경을 만드는 편이 좋다. 특히, 종합사회복지관이나 노인전문복지관, 노인주거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다면 나이들수록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최근 주 1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근처에 있는 대형병원 한 곳에서 후원해 주는 탓에 참여자들은 무료수강이다. 대다수 노인은 오전에 내가 진행하는 것과 유사한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지하 식당에서 식사한다. 일부 노인은 식사까지 무료이다. 아니면 2천 원 정도 지불하고 평일은 매일 먹고 토요일은 도시락 봉사를 받기도 한다. 프로그램 첫날 나도 식당을 이용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점심식사 이후 바로 귀가하거나 선택해서 오후 프로그램까지 참여한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학생처럼 이들은 주말 빼고 거의 매일 복지관을 이용하고 있었다. 매일 만나는 탓에 친구처럼 서로를 챙긴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 차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아 보인다.

최고령인 93세 할머니와 80대 할머니는 사이가 더 좋다. 얼굴만 봐선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추론하기 어렵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녀 없이 혼자 지내는 분이 대다수였다. 근처에 자식이 사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예가 더 많았다. 웰다잉 프로그램인 만큼 남은 시간 동안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낼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혼자 살아야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르신들은 아프지만 않다면 혼자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누구나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다.

특히, 중년 이상이라면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미리 한다고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나이들수록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멀리 가지 않더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 곳에서

여럿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으면 금상첨화다.

외롭게 늙어가지 않는 환경이면 더 좋겠다.




중노인기로 접어 들수록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곳은 피해야 한다.

가족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된다. 가족이라고 마음을 더 많이 나누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면 친구, 동네 이웃이라도 괜찮다.


프로그램 참여자들 중 여자 어르신들은 혼자 되신 분들이 훨씬 많았다. 배우자와 사별이나 자식이 곁에 없다면 이 분들처럼 복지관 친구랑 훨씬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어디서 누구랑 무엇을 하며 살지에 대한 생각은 필수적이다.

더불어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와 실천도 필요하다.


무더위속에서 만난 글모임 동생들과 이번에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사람 모두 잘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감했다.


중년은 웰다잉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해 지는 시기다.

죽음은 모두에게 예고된 공평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삶의 마지막 여정인 웰다잉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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