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함께 돌보는 친구처럼 지낸다면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자식이 걸린다. 혹여라도 부모의 이혼으로 편견 속에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한 때문이다.'
갈등으로 이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제일 많이 고민하는 내용 중 하나다.
이혼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자주 언급되는 것은 가족구성원의 변화에 따른 편견이다. 특히, 자녀의 심리적 상태를 걱정한다. 미성년 자녀라면 육아와 교육을 위해 부부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새로운 갈등을 겪게 된다.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 쪽과의 실랑이는 이혼 판결을 늦추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몇 년전, 남편의 외도로 아들 셋을 혼자 키워온 L의 청첩장을 받았다. 큰 아들이 결혼한다며 따로 전화를 한 L은 신랑이 될 아들이 남편에게 연락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며 고민을 털어났다.
아직까지 L은 남편의 행동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혼식 혼주석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원하지 않는 아들이 마음쓰인다고 했다. L은 빈말이라도 엄마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기로 하고 직접 아버지한테 연락해보라고만 했다. 만약, 남편이 결혼식 당일에 나타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며 한동안 심란해했다.
결국, 큰 아들은 따로 아버지를 만나 청첩장을 주고 결혼식장으로 초대했다. 결혼식 당일, L의 남편을 처음으로 봤다. 살짝 어색하게 L과 서 있는 모습은 내가 사전에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겼다. 잘 모그는 사람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테니까. 나 역시 편견 속에 있는 것인지도.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장까지 함께 다니며 인사하는 L과 남편의 모습이 자꾸 어색한 것을 보니 내 편견의 눈길이 아닌가 싶어 오는 내내 '나도 별수 없나?'란 생각에 잠시 빠졌다.
부부의 이혼 상태를 잘 모르는 하객들은 나처럼 보지 않았을 게 분명할 것이다. 두 사람도 어색했지만 가능한 새출발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자연스럽게 목례를 하며 감사인사를 하며 애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다시 마주하는 것은 자식때문이다. 앞으로 두 아들의 일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지 알수 없다. 결혼식 후 다시 만난 L도 그렇게 말했다.
L의 남편은 이혼 후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양육이나 교육에 참여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약속한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L은 힘들었다고 했다. 그 부분에 대한 어려움을 아들도 알고 있어 아버지를 찾지 않을 줄 알았다며 속마음을 털기도 했다. 큰 아들의 선택이 여전히 서운한 모양이었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이어지는 L의 하소연에 다시 귀기울였다.
"그래도 엄마가 중심을 잡고 있어서 세 아이 모두 성인으로 잘 큰 것처럼 보여요."
살짝 눈물이 고인 그녀의 눈빛이 조금 더 촉촉해 보였다. 그동안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오랫동안 힘들었던 것은 알 수 있었다.
어쩔수 없이 이혼을 선택해야 한다면 자식들 앞에선 여전히 부모로 서야 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L처럼 말이다. 마음이 안 맞으면 친구사이였어도 절교한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이혼을 선택하는 부부라면 훨씬 아픈 시간을 각자 보낼 것이다. 특히, L처럼 남편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경우엔 더 그럴 것 같다.
정신적, 심리적, 경제적 공동체로 몇 년에서 수 십년을 함께 한 사이인 부부였기에 쉽사리 졍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때때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탓에 우울해지기 싶다.
사랑했던 마음에서 벗어나 상대를 미워하고 이혼으로 정리하는 과정은 둘 다 어려운 결정인 예가 많다. 서류 정리가 되었다고 해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서야 하는 순간엔 최소한 자녀들을 위해 안전망은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편과 아내 역할은 멈추더라도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할 일은 하면서.
가끔 원수같아서 이혼하고 싶다는 사람을 향해 우스갯소리를 한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잖아요. 그 원수를 조금만 더 사랑해 보면 안 될까요. 그래도 안되면 그 때 결정하시고."
상대가 이 말에 헛웃음을 띄며 말한다.
"난 예수가 아니예요. 원수는 원수일뿐."
어그러진 부부관계를 되돌리기란 어렵다. 그래도 자녀들을 위해 여전히 부모의 이름으로는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식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이혼으로 환경이 달라졌더라도 가족구성원이 변하진 않았다. 여전히 자신을 중심으로 아빠와 엄마, 형제들의 관계는 그대로다. 아빠가 아저씨가 되진 않는다.
이혼하지 않고 살면 가장 좋겠지만 이혼할 수밖에 없다면 부모역할만큼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혼 전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꼭 나누면 좋겠다. 자식에 대한 마음까지 인색하지 않도로.
부부 관계를 정리하더라도 부모로서 자식에겐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에 대한 만족은 사라졌거나 감소했더라도 아빠와 엄마의 자리만큼은 유지하도록 노력하자는 합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이전보다 해마다 이혼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기사를 접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자녀들도 부모의 이혼 결정을 이해하는 경향이 더 많다는 인식 조사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혼한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 부부의 문제가 자녀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예가 실제 상황에서 있기 때문에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미루거나 졸혼이란 색다른 선택을 주장하기도 한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혼 과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시선뿐 아니라 자녀의 시각으로 이혼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어떤 부부가 이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의 자녀가 한 선택이 아니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덜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