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기독교에선 만왕의 왕을 여호와라고 이야기한다.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왕이신 예수를 섬기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스라엘에 사람이 왕이 되어 통치했을까?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던 구약 시대에는 왕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대리자인 사사(士師)를 두었다. 수많은 사사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 중 사사기에 잘 기록되어 있다. 사사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이 잘 따르도록 이끄는 대표적인 제사장으로 구별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울 타락 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사기 2장 18절~19절)
그러나 사사들 역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약하고 죄성이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엘리 제사장과 삼손이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사사기 13장 5절)
삼손은 나실인이었으나 사명보다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혀 불순종의 죄를 지었다. 블레셋 여인을 탐하고(사사기 14장 1절~3절),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먹었다(14장 8절~9절). 하나님께서 주신 강력한 힘을 의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특히, 나실인으로 그동안 자르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잘리는 수치를 당하고 결박당했으며 끔찍한 모습으로 죽음에 이른다(사사기 16장).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사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이유였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우선시한 탓이다.
엘리는 제사장으로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했다. 특히, 자식 교육을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사무엘상 2장 12절)
가정으로서 아버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결과, 행실이 나쁜 두 아들의 죄를 제때 꾸짖지 않았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구별된 제물에 손을 되었으며, 제사를 돕는 여인들을 희롱하고 동침하는 죄를 범했다. 엘리는 두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 책망했으나 강력히 금하지 않은 탓에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는 영적 지도자에서 주어진 책임을 방기한 때문이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사무엘상 3장 12절~13절)
삼손과 엘리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았지만, 영적 한계와 인간적인 실수로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 이들의 죄는 개인적 실수라기보다, 영적 타락과 지도력 붕괴에 가깝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가 있었지만 반복적인 불순종의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간 왕에 대한 요구를 한다.
삼손과 엘리의 실패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심판이 필요한 죄를 짓는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반복적인 불순종을 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인간 왕의 요구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한 모습의 전형이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상 8장 5절)
백성들의 왕에 대한 요구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거부하는 불순종 행위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사무엘상 8장 7절)
사사 시대는 중앙 통치자가 없는 부족 연합 체제였다. 왕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행동했다. 불순종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장 25절)
왕을 세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인간 왕을 더 신뢰하려는 선택이다. 즉, 불순종의 방증이다. 하나님은 인간 왕이 생겼을 때 어떠한 제도가 생기는지 미리 경고했다(사무엘상 8장 10절~18절). 사사였던 사무엘은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요청에 기뻐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사무엘상 8장 9절)
하나님의 경고도 백성들에게 전한다.
'왕을 위해 백성들의 아들들은 병사가 돼야 했다. 군대에 징집될 것이며, 무기와 병거 장비를 만들어야 한다. 곡식과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세금으로 내야 하며, 딸들은 향료, 요리, 떡 굽는 자로 일하게 될 것이다. 밭과 포도원, 감람원을 왕의 신하를 위해 바치게 될 것이고 노비와 소년이 왕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고 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으로 하나님은 최초의 왕으로 사울을 선택한다.
“내일 이맘때에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사무엘상 9장 16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무엘은 사울을 공개적으로 왕이 되게 한다.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무엘상 10장 24절)
왕이 세워진 이후 사사시대는 끝이 나고 왕정 시대로 전환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는 왕정 시대 이야기는 구약의 열왕기상하 편에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최초의 왕정은 실패로 끝난다.
사울은 왕으로 외적인 기준은 충족했으나 하나님의 마음에선 벗어난다. 그 결과 보잘것없이 취급된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에게 왕권을 물러주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다윗이었지만 실수한다.
왕정은 백성의 요구로 시작되었지만 바로 폐기되지 않았다. 2대 왕인 다윗에게 하나님은 왕정의 지속을 약속하셨다. 장차 오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사무엘하 7장 16절)
사람들이 세운 왕은 외모나 전투력이 뛰어났지만 실패와 타락을 반복한다. 결국 참 왕인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인간 왕의 통치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경험한다. 불순조의 결과는 멸망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계명 우상숭배 금지에 대한 명령을 위반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받았다. 어떤 왕을 세워도 하나님의 뜻엔 합하지 못하면 노에처럼 살았다. 이런 삶을 끝없이 반복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 뚜렷하다. 그들은 출애굽 이전부터 이집트(애굽)의 노예로 살았다. 이후에도 강제 이주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해방을 맞기도 했지만 흥망성쇠처럼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반복하며 살았다.
400년간의 이집트 노예 시절은 오늘날까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내용이다. 자유가 없는 억압된 모습이었다.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출애굽기 1장 12절~14절)
이후에도 그들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호세아 제구 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열왕기하 17장 6절)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 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열왕기하 25장 11절)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반복적인 구조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하나님이 참된 왕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는 왕을 원한 탓에 심판을 경험했다. 불순종의 결과였다. 하나님보다 인간의 권력을 강하게 붙잡았던 불신앙의 결과를 맛본 것이다.
왕정 시대를 신학적 의미를 해석해 보자.
최초의 사람 아담도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다. 최초의 왕 사울 역시 불순종으로 폐위되었다. 새로 세워진 다윗이나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인간 왕들도 불순종의 역사를 남겼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산 다윗은 충직한 군대 장군으로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녀의 임신을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한 다윗의 죄는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이름도 기록되지 못한 채 죽은 탓에 다윗은 훗날 하나님 앞에 울며 진심으로 회개했다.
분순종한 인간 왕들의 모습은 죽기까지 완전한 순종을 보인 예수와 대조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땅에 보내져 인류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새롭게 쓴다.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에서 시작된 인간 왕들은 보기 좋아도 죄인이다. 사울왕처럼 모두 실패한 사람일 뿐이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장 12절)
그러나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왕과 다르다. 어떠한 흠도 죄도 없는 완전한 왕이다. 인간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속죄양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영원한 생명이기에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여 새로운 구속사를 이뤄냈다. 즉, 예수만이 인류 구원의 통로이며 만왕의 왕이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사로부터 인간 왕에 이르기까지 어떤 제도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