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최초의 가정과 가족관계

상호주의로 바라보는 가족관계와 역할

by 오로라

가족은 가장 많은 사랑을 경험하는 집단이다. 또한 가장 아프고 힘든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때로는 미워하고 또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관계는 누군가에겐 매우 어렵다. 가족에 대해 성경에선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선 가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났는지 알아야 한다. 가정은 부부관계에서 출발했다. 즉, 남편과 아내를 함께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생겨났다.


남자와 여자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제도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기초 위에서 시작되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24절)


성인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부모를 떠나야 하는 전제가 생긴다. 떠난다는 의미는 독립된 삶을 의미한다. 즉, 부모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경제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롯이 성인으로 한 가정을 이루어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길이다.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에게 부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핵심 가치를 전하셨다.


'사랑 존중 그리고 헌신!'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혹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으로 비유한 말씀으로 상호주의적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에베소서 5장 22절~25절)



가족관계가 힘든 이유가 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생기는 갈등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줄 정도다. 그래서 가정에선 부부관계를 최우선시한다.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면 가족해체인 이혼에 이를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책임의 불균형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해결을 미루거나 덮어둘수록 부부갈등은 심화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부분일 것이다. 유독 더 그런 성향을 보이는 배우자로 인해 부부관계는 갈등에 이어 단절에 이르게 된다. 관계의 단절은 최근 이혼증가율로 확인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독교 가정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올바른 신앙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했거나 외식하는 신앙생활로 새사람이 되지 못한 때문이다. 어떤 경우엔 비신앙인보다 더 못한 선택을 하는 부부도 있다. 스스로는 신앙인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종교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남편과 아내의 믿음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부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 사랑은 당연히 그럴 경우에 유지된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 균열이 생기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내면인 경우가 훨씬 많다. 즉, 정신적, 영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더라도 흔적이 남는다. 이처럼 부부관계는 갈등 후 개선 보단 서로 등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각각의 책임과 역할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부부는 상호 존중하는 관계일 때 평안하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유지될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체이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교회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됨과 같다고 한 것이다. 우선 남편의 역할을 살펴보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에베소서 5장 25절)


남편은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데 조건이나 이유는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남편도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나 에너지 수준이 높다. 창조론적 관점으로 봐도 남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근원적 힘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 노동이나 강도 높은 일을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잘할 수 있는 구조다. 일이나 노동을 통해 가정 경제를 남성이 더 많이 책임지는 것 역시 이런 면에서 당연시되어 왔다.


수렵과 채집 위주로 살았던 옛 시대는 이런 남성의 신체적 구조와 능력으로 가정을 지켜냈다. 반면, 여성은 가정 안에서 자녀를 돌보고 살림하며 내조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남성들이 생존을 위해 주로 먹을 것을 구하고 맹수나 적으로부터 가정을 지켰다. 그 결과, 전투력을 가진 남성이 보다 대접을 받았다. 남성의 영향력이 가정과 사회에 더 중요하게 작용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남성이고, 아내는 남편의 의견에 따르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자연스럽게 아내는 가족의 건강과 정서적 돌봄을 도맡게 되었다. 이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질서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정 안에 식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아내의 역할도 훨씬 중요해졌다. 다양한 가족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이나 문제 때문이다. 누군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야 했기에 아내들이 그 역할을 주로 담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힘든 그 과정을 아내들이 감당했던 이유는 남편의 사랑의 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괴롭고 힘든 일은 있었을 것이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골로새서 3장 19절)


남편의 입장에선 자신의 일이 희생적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편을 가장으로 세워 매우 값진 열매를 주려 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이 남편을 아내와 구별되게 창조하신 뜻을 알고 기꺼이 희생하는 편이 좋다.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정서적 배려까지 하라는 것이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장 7절)



개인차는 있지만 아내들은 남편에 비해 육체적으로 연약할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훨씬 더 예민할 수 있다. 마치 도자기나 유리그릇처럼 섬세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깨진다. 더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존중과 배려하는 태도가 남편에게 더 요구된다.


하나님과 대화의 시간이 기도라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편은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지속적인 독대의 특권을 가진 존재가 된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가정의 대장으로 남편을 세우신 분명한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편처럼 아내에게도 주어진 책임과 역할이 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에베소서 5장 22절)



주께 복종하는 것을 싫어할 그리스도인이 있을까?

복종을 굴종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속에서 남편의 뜻을 따르라는 의미다. 남편이 하나님 안에서 정한 것을 자발적으로 돕고 협력하는 질서 체계를 강조한 것이다. 강압적이거나 군대처럼 상명하복도 아니다.


군대는 계급에 따라 상하 관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가정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처럼 태생적 역할이 다를 뿐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굴종에 가까운 복종을 강요하거나 강압적이면 안 된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자발적 협력이 우선이다.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 속에서도 유지된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로새서 3장 18절)


이처럼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부부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가정 안에는 여러 관계가 존재한다. 부부를 시작으로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조부모와 손자녀 등등. 그중 부부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부모자녀관계이다. 부부처럼 부모와 자녀에게도 서로의 책임을 성경에선 강조했다.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할 책임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애굽기 20장 12절)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이다. 제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이후 10계명까지는 사람들 간에 지키도록 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람이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이 부모 공경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제1계명에 준할 정도로 부모에 대한 예와 도리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1십계명)


하나님께 순종 혹은 불순종한 사람들이 어떤 결과에 이르렀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만큼 하나님은 순종을 강조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장 1절)


가정 안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순종처럼 부모를 향한 순종을 언급했으니 중요하다.




이런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역할도 성경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떼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장 7절)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형태로 깨우침을 주시는 것처럼 육신의 부모도 자녀를 자나 깨나 언제든지 가르쳐야 한다. 이 가르침이 부모의 잘못된 혹은 파괴적 권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명령과 훈계가 아니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유지하는 신앙교육이 우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장 7절)



지식을 얻기 위해선 지혜로워야 한다. 왕의 자리를 승계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여호와께 오로지 지혜만을 구했다. 왕으로서 그 역할을 잘하지 못할까 봐. 그 결과 하나님은 지혜뿐 아니라 필요한 부귀영화를 다 주셨다. 지혜의 왕을 솔로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잠언 3장 14~15절)


자녀는 성숙한 신앙을 갖기에 부족한 존재이다.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영적 발달 역시 미성숙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로 하여금 자녀를 양육하도록 하셨다. 하지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것과 부모가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지 명시했다.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함을 포함하고 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장 4절)


특히, 청소년기 자녀를 가르칠 땐 더 배려해야 한다. 질풍노도를 지나는 이들은 감정 역시 폭풍전야와 같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기분 나쁘게 들리면 듣지 않을 수 있다. 간혹 성인 중에서도 옳은 말인데 기분 나쁘게 하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태도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말은 오히려 독처럼 반감을 준다.


하나님의 훈계처럼 자녀에 대한 가르침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듣기 싫은 목소리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고 해도 거부감을 느낀다면 먼저 부모의 태도를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부모자녀관계도 부부처럼 상호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이는 모든 관계 역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가족 관계도 사랑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디모데전서 5장 8절)


신앙인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말씀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목회자의 가정 안에서도 불신자보다 못한 행위들이 있으니 씁쓸하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돌봄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는 거룩한 척 하지만 부모에게 문안하거나 경제적 지원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심지어 맹신적인 태도로 환자인 부모나 가족의 상태를 돌보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기사까지 있었으니 회개할 일이다. 비기독교인들도 하지 않는 방임도 없진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을 악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사랑과 긍휼함이 없는 이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두려워해야 한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장 6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마태복음 9장 13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위선적인 이들의 행동을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먼저 보이는 자기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장 20절)




사랑이 없는 신앙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사랑의 본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고 갈등이 없진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가족에 대한 사랑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장 8절)



하나님께 드리는 형식적 예배보다 형제와의 관계 회복이 먼저이고 사랑과 용서가 중요한 것이란 것을 강조한 직접적인 말씀도 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3절~24절)


이처럼 하나님은 가족관계 속에서 당신의 사랑이 드러나길 원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한일서 4장 7절)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이 우리 가정 안에서도 나타나길 원하신다. 가족 관계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사랑이 살아 움직이는 실천적 모습이길 바라는 것이다. 즉, 참된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할 정도인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가족관계에서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돌아보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참그리스도인은 아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장 27절~28절)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셨다. 외식하는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겉모습만 경건하고 사랑과 긍휼히 부족한 상태였다. 즉, 자기 의를 드러내고 형식을 중시한 나머지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교만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만약,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보고 아프더라도 자기 문제를 직면하고 돌이켜 관계를 개선하고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하나님께 구해보길 권한다.


혹시라도 고통스러운 가족 관계 때문에 계속해서 상처만 받고 병들어가고 있다면 혈연의 가족이 아닌 하나님과 영적 가족을 만나야 한다. 인간적인 가정 안에서의 가족 중 누군가는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도저히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라면 혼자 있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가족에 대한 미움보단 하나님께 사랑의 마음을 기도로 구해야 한다.


용납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거나 사랑하기 힘든 가족이 있다면, 또는 외면, 방임, 학대와 같은 행위가 가정에서 나타난다면 비기독교적인 행태라고 봐야 한다. 바리새인처럼.


이런 경우,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반드시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치료나 상담처럼 도움의 방법을 빠르게 찾아보고 그것도 어렵다면 분리가 최선이다. '채소를 먹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잠언 15장 17절)'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가정 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것이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장 9절)



가족 중 분명 영적으로 미련한 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잠언에 따르면 미련한 자는 남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자기 생각만 내세우기 좋아한다(잠언 18장 2절)고 했다. 상대방의 생각을 듣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미련한 자는 망할 것이고, 어리석은 자들은 고집대로 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라고 부정적인 최후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잠언 1장 32절). 그렇다고 이런 가족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 말자. 원수에 대한 복수는 우리에게 없다. 하나님께 조용히 아뢰면 그 마음을 아시고 해결해 주실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장 19절)


그러므로 헛된 제물을 드리는 것을 경계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 안에서 가족들이 상호 책임과 의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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