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다려줄까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질 않았다.
부모님께 아프다는 핑계를 댔지만 나는 민성이를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지만 일단 하루는 피해 보자 싶었다.
나는 다음 날도 아프다고 학교에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엄마는 꾀병을 눈치채셨고
등짝을 한 대 맞고는 또 눈이 퉁퉁 부어서 교실에 들어섰다.
쉬는 시간, 민성이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잠깐 보자고 했다.
"여기서 말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내가... 때려서 미안해. 짝꿍 바꾸고 싶으면 선생님께 말해도 돼.”
그리고는 생일선물이라며 빨간 포장지에 작은 선물을 건넸다.
선물 주는 걸 지켜보던 건너편의 영주가
"그거 내가 골라줬어." 하며 히죽거린다.
뜻밖에 선물이라 화가 풀린 뻔했지만 영주의 말에 나는 더 가시가 돋쳤다.
"알았어."
건성으로 대답하고 책상서랍 안에 선물을 대충 집어넣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 나는 민성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 사실 관계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나의 짝사랑은 아팠고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가끔 웃으며 장난쳤던 좋았던 기억들이 떠올라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민성이는 내 마음을 몰라준 게 아니라 내 잘못된 방식이 그의 마음을 더욱 닫히게 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교실과 복도를 대대적으로 청소하는 날이다.
나무판자바닥이라 자주 광을 내주어야 했다.
선생님은 수건이나 안 입는 옷으로 걸레로 만들어 오라셨고
우리는 분 단별로 나와 책상을 밀고 줄 맞춰 앉았다.
그리고 남자 반장이 왁스를 바닥에 뿌리며 돌아다니면 열심히 문대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짝꿍인 민성이와 마주 보고 걸레질을 했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우린 말없이 걸레질만 했다.
나는 늘 원피스를 입었기에 치마를 여미고 걸레질을 하는 것이 영 불편했다.
한 손으로 치마를 잡고 한 손으로 걸레질을 해대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민성이가 봤는지 벌떡 일어났서 자기 자리로 가더니
자신의 방석을 내 앞에 내밀었다.
어색한 표정의 민성이는
“깨끗한 거야. 불편할 테니까 앉아서 해.”
하고 내 치마를 방석으로 가리킨다.
다른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어서 받아서 앉았다.
"고마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바닥만 보고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
방석에 낮으니 한결 편해져 내가 문지른 바닥은 점점 광이 났다.
그렇게 3학년 생은 모두 교실과 복도를 열심히 닦았다.
두 발짝씩 이동해 가며 우리는 복도까지 깨끗이 광을 냈고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나는 악! 소리를 질렀다.
순간 비명이 나왔다.
모두가 날 쳐다봤기에 너무 창피했지만 순간 눈물까지 왈칵 나왔다.
바닥을 닦다가 손가락에 나무 가시가 박혀버렸다.
둘러보니 선생님이 없었다. 나는 어찌할 줄 몰라 당황했고 친구들도 놀라서 쳐다만 봤다.
그때 민성이가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일으켰다
“빨리 나와, 양호실 가자.”
나는 잡힌 손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민성이는 단호했지만 침착하게 다친 손을 높이 들게 하고는 내 팔을 잡고 양호실로 향했다.
나는 양호실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 아이는 잘 찾아갔다.
지난번 체육시간에 민성이가 양호실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잘 찾는구나.’
나는 민성이를 힐끔 쳐다봤다.
민성이는 내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고 나도 잡힌 손을 그대로 둔 채 열심히 쫓았다.
“선생님께 말도 안 하고 이렇게 나와도 되나?”
속의 말인지 민성이에게 한 말인지 모를 만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민성이는 “내가 교실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릴게.”
나지막하나 민성이의 목소리가 선생님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양호실이 이렇게 멀었던가.
둘만의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나를 향해 돌아보는 민성이는 내 손가락을 보며
“아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응.”
이 상황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매일 못 되게 군 나에게 잘해주니 순간 민망했다.
양호실에 들어서자
“기다려줄까?”
순간 시간이 멎은 것처럼, 무슨 고백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몸이 둥실 떠오름을 느꼈다.
10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