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A의 이야기를 쓰다
보고서를 쓰다가 회의록을 쓰다가 그렇게 힘을 쓰고 애쓰고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자를 열 번 스무 번 쓰다 영혼의 빈털터리처럼 텅 빈 얼굴로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든다.
어쩌다가 평범한 회사원A의 삶을 살게 된것일까
보통의 직장인인 우리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는데 보내지만, 정작 나를 위한 글을 쓰는 시간은 거의 없는 지도 모른다.
하루 15시간 이상씩 글을 쓰고 스스로를 ‘문학노동자’라고 칭하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
하루 6시간씩 좋아하는 소설가의 작품을 필사하는 노력 끝에 소설가가 된 아사다 지로
회사에서 퇴근 후 매일밤 꾸준하게 글을 쓰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커서 이들처럼 소설가가 될 거라며 눈을 반짝이던 소녀는 결국 자라서 회사원A가 되었고, 그래도 프란츠 카프카 처럼 퇴근 후 매일 저녁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그마저도 일에 치이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잠드는 날이 더 많아진지 오래로, 올해로 7년차라고 한다.
"좋아. 잘 썼어!"
K부장은 한마디와 함께 보고서를 돌려주었다. 보고서는 처음 출력한 상태 그대로 깨끗했다. 늘 직원들이 쓴 보고서가 마음에 차지 않아 미쓰비시社 "제트스트림" 빨간펜을 들고 사정없이 취소선을 긋기로 유명한 K부장이 왠일인지 만족한 것 같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 나는 권위있는 문학작품상이라도 받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쓴다는 것’은 회사의 보고서든, 한 편의 작품이든, 어느 순간의 기록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노동의 결과물이다. 노동자들의 땀방울 없이 튼튼한 건물이 지어지지 않듯이 고된 노동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보고서도, 작품도, 기록도 남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노동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처럼 평범한 B, C, D, E들과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언젠가 온전히 나의 글을 쓸 때 진가를 발휘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된 하루를 견뎌낸다.
우리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고백하는 순간과 고백 받는 순간 남녀가 서로 주고받던 미세한 떨림들을, 카누를 타고 바라본 에메랄드빛 칸쿤 카리브해를, 최종면접장에 들어서기 직전의 긴장감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글만으로 전할 수 있을까? 그저 수없이 반복해서 갈고 닦아 쓰는 ‘노동’을 통해 최대한 비슷하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 없이 다시 써 봐도 도저히 쓸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아주 소중한 사람의 삶의 무게를 알아버렸을 때
그 무게가 나에게 알 수 없는 힘을 통해 전해졌을 때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건지, ‘감히’ 그 삶의 무게를 내가 재단해도 되는 건지 망설이다가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감정이 터질 것만 같아서 무어라도 적어두고 싶었지만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외에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하였다.
매일 하고 있지만, 하지 못하는 것
다른 노동으로 지쳐 놓치고 마는 일
차마 다 할 수는 없는 것
나의 꿈
수첩에 쓴 부끄러운 낙서들이 언젠가 책이 되고, 스크린에 펼쳐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내일 아침에도 회사에 출근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아마도 똑같아 보이는 평범한 화, 수, 목, 금을 지내겠지만
글짓기 대회 상장에 적힌 이름 석 자를 보며 미소를 짓던 그 때 그 어린 시절처럼 여전히 꿈을 꾸며 언젠가 서점에서 책 표지에 적힌 나의 이름 석 자를 보는 날을 그리며
보고서를 쓰고
회의록을 쓰고
힘을 쓰고 애쓰고
마음 속에 ‘참을 인(忍)’자를 열 번 스무번 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