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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삶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by HoA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중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에는 기억하고 싶은 글이 많아 연신 카메라로 페이지를 찍어두었다.

특히 사진 속의 글을 맞닥뜨렸을 때는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내지 못했던 내 심경과 처지를 누군가 대신 써준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신기한 지경이었다.

생각하고 보니 내 인생이 저런 상태로 휩쓸리기 시작한 것은 한참 전이었다는 사실도 상기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15년 전, 사회생활에 피로감을 일찌감치 느낀 나는 노승 한분이 참선하는 암자로 도망치듯 휴가를 떠났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내게 아무런 말도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곳, 오롯이 내 뜻대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내 바람을 듣고 엄마가 마련해준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공주의 산골에 위치한 그곳은 새벽이면 새벽 소리가 밤이면 밤소리가 들릴 듯 고요했고 나의 의식과 행위를 방해하는 것은 뜻했던 대로 전혀 없었다.

단 며칠 만에 마음이 편해졌다. 작은 연못에 핀 연꽃을 한참 바라보거나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어느 정도의 여백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암자에 기거하시던 스님은 그림을 그리는 노승이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글과 동자가 소를 타는 밑그림이 그려진 화선지에 채색하는 일을 마치 삼매에 든 수행자처럼 지속하셨다. 나는 곁에서 함께 그림에 색칠을 해나갔다. 시키지 않은 일이라서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나면 그만둘 일임이 확실하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음이 편해진 나는 어느 날 스님이 주시는 차를 마시며 하소연하듯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회생활이 힘든 것은 내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와 연결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같다고, 그래서 괴롭다.'라고 했다. 스님은 조용히 웃으시며 '젊은 나이에 큰 공부 했네. 본래가 그런 것이지.'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내 인생은 한참 전부터 끊임없이 외적 요인에 휩쓸리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괴로워하며 저항하고 싶다고 느낀 시점이 그즈음이었을 뿐이다. 그 이후 십수 년에 걸쳐 나는 내 자신을 찾고자 시도했고 나만의 신념을 갖고 '나의 삶' 살겠노라고 크고 작은 다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주변의 것들이 나를 어디론가 휩쓸고 그 흐름에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흔들리는 처지에 있다는 것은 여전한 것만 같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인생이 그런 것이라면 본래 그러함을 받아들이는 것, 굳이 외부 세력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부유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현명한 삶의 방식은 아닌가 고민할 때가 있다.

아마도 사회인으로서 그들과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이상, 미련이라는 애매한 욕심이 먼지만큼이라도 남아있는한 이 고민은 계속될는지 모르겠다. 다만 외부 세계를 통제하지는 못하더라도 나 자신의 감정정도는 제어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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