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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목표

단순하게 살 수 없는 아이들

by HoA

내가 어릴 때는 공부의 목표가 단순했고 비교적 분명한 납기가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에게 피할 수 없는 과업이긴 했지만 우리 시절에는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다."는 말 한마디로 공부라는 것이 그래도 할만한 것이 되기도 했고 그에 대한 보상 역시 어느 정도는 보장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 제목이 낯설면서도 알고 보면 가성비 측면에서는 굉장히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대학 가면 놀았고 명문대생이면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열 살 큰아이 공부를 시키면서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번다하다. 고작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래도 앞서가는 아이들 생각하면 더 가열차게 시켜야 되는 건 아닐까, 이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 방식이 입시 이상의 효용은 있을까, 그래도 돌이켜보면 명문대라는 간판 덕에 내 인생이 그나마 덜 힘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단순히 좋은 대학을 나온다는 것이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런 생각이 수시로 교차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하루 일과를 정해주면서도 크게 군말하지 않고 따라주는 아이가 고마운 한편으로는 이 일이 단지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은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기도 한다.

어제는 친한 언니와 아주 긴 통화를 했다. 아이 둘을 낳고 늦깎이 유학을 가서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도 아빠랑 살고 싶다는 아이들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언니 역시 두 딸의 교육 문제로 고민이 많은 듯했다. 중3인 딸아이를 일 년 정도는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고 세상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며 학교 공부 말고 다른 걸 가르쳐보고 싶은데 구체적인 방법이 막상 떠오르지는 않거니와 우리나라 교육 과정에서 그런 게 쉽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겠다는 언니의 말이 십분 이해가 되면서도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무자비하게 선행을 달리고 내신을 잘 받기위해 서너 시간 자가면서 대학에 간들 늙은 교수에게 옛날식 교육을 받은 결과는 어쩌면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노예 한 명을 만드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느냐는 그녀의 말이 구구절절 내 마음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해야 일론 머스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주도적인 생각을 하고 그것을 구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 둘 다 모르고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아이는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코딩도 배워야 하고 식견을 넓히기 위해 어느 시점에는 유학도 가야 할 것이다.

언니도 나도 정작 자신은 단순한 목표 아래 시키는 공부 하면서 별생각 없이 자라 놓고는 성인이 되고 나니 그런 단순한 목표로는 긴 인생이 도무지 해결되지 않음을 알기에 정작 아이들에게는 복잡한 목표와 더 많은 과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막무가내로 공부, 성적에 집착하는 엄마들과 다르다고 위안하며 결국은 좋은 엄마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머리가 복잡했다.

소위 대치동 엄마들은 가혹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목표가 단순하다. 대체로 공부를 중점적으로 잘하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명확하게 주어지는 미션만 열심히 해내면 된다. 수학 학원을 두 개쯤 다니면서 3~5개년 정도 선행을 하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토플을 하고 논술학원과 실험 학원을 다니고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하다 보면 일주일이 쉴 틈 없이 흘러간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포기하거나 반항할 생각이 아니라면 고민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란 엄마는 아이를 그렇게 시킬 뚝심도 없고 그렇게 하지 않을 배짱도 없다. 적당히 지치지 않을 만큼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내 아이의 스케줄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딱히 맘 놓고 놀 시간은 없지만 10시가 되면 무조건 자야 하고 운동은 꼭 해야 하지만 국영수 어느 하나 포기할 수는 없다. 직접적으로 공부가 다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기승전 공부로 끝나는 많은 대화에 비추어보면 우리 아이가 이런 엄마 때문에 더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하지만 밤늦게까지는 하면 안 되고 앞으로는 AI가 대부분의 일을 처리해줄 것이니 코딩을 배우라면서도 영어는 여전히 열심히 해야 한다는 모순적인 엄마가 어느 순간이 되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느 날 아이가 "엄마, 그런데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돼요?"라고 물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라고 대답하면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지금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재미없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대학 갈 때까지만"이라고 대답해주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정작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잘먹고 살아놓고 아이에겐 이런 거 말고 다른 거... 그런데 뭔지는 모르겠는 무언가를 어렴풋이 제시하면서 혼란스럽게 하는 건 아닐까.

더 이상 단순한 목표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는 시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를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현재를 사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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