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 대응하느라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보냈다. 감독국을 대응하는 일은 늘 그렇듯 짜증스럽고 굴욕적이고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일은 무사히 넘겼다.
많이 지쳤고 휴식이 필요하던 차에 운 좋게도 이번 주 재택이 어서 집에서 비교적 한가로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피곤한 건 일상이지만 삭신이 쑤시기까지 해서 병나기 전에 이번 기회에 할랑하게 쉬어버리자 싶은 마음이었다.
다행히 한 주간 급박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유가 생겨 후배가 처리한 일을 피드백해주고 상사가 만든 보고 문건을 수정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기획할 에너지는 도무지 생기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할 수 없는 성격인지라 잔잔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하루하루가 지났다. 그중 하루는 추진하고 있는 사업 관련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보도자료까지 써다 바칠 때는 외면하더니 기자 요청에 대충 카톡으로 몇 줄 대답한 내용은 적당히 윤색되어 금세 일간지 기사로 탄생했다. 아무도 관심 없을 그 기사를 회사 간부들은 그렇게도 집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가상세계가 또 다른 타깃이 된 이 사회에서는 그들이 실체를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신문기사뿐인 건 아닐까, 알고 보면 그 소수에 의해 신문사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시대가 변하고 주류가 바뀌면 신문사는 어떻게 될까? 내 인생에 별 상관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고민이 이어졌다. 기업을 휘두르기도 하고 동시에 기업에 휘둘리는 게 언론이라는 걸 체감하고 난 뒤부터는 모든 기사의 반은 사실이 아니겠거니 하고 본지 꽤 오래되었다. 정답 없는 저널리즘의 역할, 부조리 따위를 생각하다 보니 쓸데없이 여러 시간이 흘렀다.
또 다른 날에는 사이가 틀어진 제휴회사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거의 일 년 만의 전화가 웬일인가 싶었더니 이런저런 하소연, 시장의 소문, 사소한 부탁 끝에 내게 다른 회사 이직 제안을 했다. 우리가 서로의 커리어까지 신경 써줄 사이였던가 의아해하면서도 좋은 자리 추천해줘 고맙다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인사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워낙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인지라 제안에 응할 생각도 없기는 하지만 그가 얘기한 우리 회사, 나의 위치, 새 포지션의 장점은 구구절절 내 생각과 들어맞아 마음이 번다했다. 그 생각을 접어버리자 금리 인상한다는데 우리 가계에는 어느 정도의 영향이 오게 되는 건지가 다음 걱정거리가 되었다. 부부 둘 다 급여소득 있을 때 투자해야 한다며 무리를 좀 했는데 금리가 많이 인상되면 적잖은 타격이 올 수 있다. 어차피 3년 고정으로 대출받아 당장 닥칠 일이 아닌데도 벌써부터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한심하고 웃기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끊이질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불안이 많은 사람이긴 했다. 어느 순간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쩌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면 한참 괴로워하다가 내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불안을 조장한 스스로를 응징하곤 했다. 그런 나쁜 마음은 불현듯 떠오르고 마음을 한창 어지럽히고 이내 사라지곤 했다. 주기와 패턴은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어제는 남편에게 금리인상설과 이번 주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더니 그는 내가 예상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고 설사 벌어진다 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란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지 않느냐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세상에 다 나쁜 일도, 다 좋은 일도 없는 건데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자신만이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니 순간 남편이 법륜스님처럼 느껴졌다. 나라는 불완전한 사람과 살면서 많이 성숙해진 남편을 보니 괜한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남편은 와이프가 미래에 대한 모든 걱정을 도맡아 하고 있으니 자신은 좀 더 행복하게 쉬어도 되겠다고 덧붙였다. 나도 남편 같은 성격을 타고났으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한주 정도는 쉬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몸은 좀 쉬었을지언정 정작 쓸데없는 번민으로 고민하느라 여전히 피로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진짜 '쉼'은 걱정거리가 끊이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는 마음을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 사람 바뀌는 게 강산 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아마도 진짜 쉼을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기분이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