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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3대를 잇는 박완서 선생님

by HoA

제이미는 독서토론 학원에 다니고 있다. 학원에서 매주 한 권씩 책을 선정해주면 그 책을 읽고 가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번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가 선정되었다. 나의 청소년기를 함께했던 추억 속의 박완서, 아동 도서이니 짬날 때 나도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방이 아닌 거실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엊그제 내게 아침을 챙겨주시며 "아이고, 이 책 읽고 아침부터 눈물바람 했다."라고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토요일 아침, 식구들에게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이고 둘째가 그림을 한창 그리는 틈을 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탄생과 함께 엄마를 잃고 아빠마저 타국으로 떠나 결국 심성 착한 이모 손에 자란 복동이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별일 아닌 일상처럼 잔잔하게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비극적 설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혀 슬프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아이의 일상 속 잔잔한 에피소드가 모범생의 일기처럼 단정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따뜻한 그림이 어우러진 이 책은 담담했지만 품은 것이 많았다. 초등학생 고학년 남자아이, 감정이 미성숙한 가운데 철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복동이의 감성을 그려낸 할머니 박완서는 역시 과하지 않은 문체로 읽는 이의 감정을 충분히 적셔낸다. 그래서 나 역시 결국은 엄마처럼 아침 댓바람부터 두세 차례 울고 말았다. 어려서 외할머니를 잃고 외로운 유년을 살아냈던 나의 엄마는 아마 복동이의 이야기가 당신의 유년을 닮아 우셨을 테고, 나는 그랬을 나의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아니 복동이보다 백배는 더 외롭게 자랐을 엄마가 어떻게 내게 그리고 그 자식들에게까지 넘치는 사랑을 주며 살 수 있는지 짠하고 미안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울었다. 어떻게 태어났건 어떤 상황이건,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곁에 있다면 인생은 충분히 살만하고 감사한 것임을 엄마가 내게 늘 말하듯이 이 책이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아빠 사업이 망했고 엄마는 많이 아팠다. 나는 공부를 가열차게 시키는 기숙학교에서 안팍으로 갑갑하고 야속한 세월을 보내야했다. 그 시절 야간 자습시간, 참고서 사이에 끼워 몰래 읽던 박완서 문집이 내겐 따뜻한 위로이자 좋은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마흔이 넘어 읽는 박완서도 역시나 위로가 되었다. 잠시나마 짜증나는 회사일, 이해하고싶지도 않은 세상사를 완전히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감동한 이 책을 오늘부로 11살이 된 아들내미는 어떻게 느낄까. 아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글씨만 주욱 읽어 내려갈지도 모를 테지만 박완서 소설가가 전하는 메시지 속에 외할머니와 엄마의 사랑을 조금은 전해받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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