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불변의 스킬은 없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유
나의 온라인 멘토라 할 수 있는 신수정 님의 글 중 하나를 인용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말이나 보여주는 시그널만으로도 상대가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엘리자베스 뉴튼이라는 심리학자의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라는 실험에서도
증명되는데 누구나 아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의 50%는
탁자 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노래의 제목을 맞출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2.5%의 사람만이 곡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는 탁자를 두드리지 말고 노래를 부르라고 조언한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조직 내 상하 간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종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강의나 조언은 중학교 도덕책처럼 일리는 있지만
디테일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신수정 님은 탁자를 두드리기보다는 노래를 하라고 했지만 '노래'라는 표현 자체도 다양한 것을 함의한다.
나는 일관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하라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어쩌면 듣기 좋게 표현하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함축적으로 전달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노래 역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노래는 지극히 듣는 사람의 취향에 의존한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감흥이 일지 않으면 소음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사는 대개 본인 노래에 심취하여 남의 노래 특히 부하직원의 노래는 듣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는
일이 많다.
제대로 된 메시지 전달이 어려운 더 큰 이유는 조직문화, 한 조직을 구성하는 알파메일(혹은 알파걸)의 성향에 따라 지향되는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전통적인 조직사회에서는 직접적인 표현을 불편해하는 문화가 적잖이 있어
우회적인 표현이나 간접적인 전달을 세련된 표현방식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반론에는 기분 먼저 상하고
적은 만들면 안 되는 정치적인 집단에서 이런 현상이 주로 목격된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의도가 존재하지 않던 지배계급의 시그널이 다양한 서사와 스토리를 갖게 되고
오해와 망상을 낳으며 연관도가 낮은 사람에게까지 필요이상의 피로감을 일으킨다.
어쩌면 커뮤니케이션은 스킬이 아니라 문화일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존중하는 문화,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조직에서는 신호가 찰떡같든 맵떡 같은 전달하는 연습과 토론을 통해 결국 진의가 전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찰떡같은 표현을 해도 권위자의 도그마가 암암리에 인정되거나 다른 의견이 지적질로
여겨지는 조직에서는 찰떡이 바닥에 눌러앉은 껌처럼 거슬리는 것으로 치부될 뿐이다.
사람과 문화를 불문하고 워킹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란 어쩌면 유니콘 같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 다름을 표현하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충분히 연습되고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건강한 소통, 즉 전달과 피드백이 가능하다.
'눈치'가 강력한 경쟁력이 되는 사회다. 지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좀 다를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알잘딱깔센'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 리 없다.
이제는 표현의 방식이 글이든, 연설이든, 독백이든, 노래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정리하고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소음을 줄여야 메시징이 조금이라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